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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경
[사람이슈] 세계 속 아리랑 고개, 청년의 발걸음으로 넘다
제 872 호    발행일 : 2014.02.10 
<아리랑유랑단> 단장 문현우 학생

2012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된 아리랑, 우리 것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서러움을 한 순간에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민족의 한을 노래로 승화시켜 국민들의 가슴을 뜨겁게 울리는 아리랑의 가락이 세계에서도 울리게 됐다. 바로 청년 민간외교단체 ‘아리랑유랑단’의 노력 때문이다. 전 세계 16개국 30여 개 도시를 돌며 아리랑을 알리고 온 ‘아리랑유랑단’의 문현우 단장을 만나봤다.


 
  그는 국악을 전공하는 학생도, 평소 아리랑을 즐겨듣는 학생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아리랑과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아리랑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말과 소리를 의미하는 ‘메아리’, ‘벙어리’, ‘옹알이’라는 단어로부터 태생됐는데, 이 3가지의 단어가 바로 그의 인생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시절 말레이시아로 조기유학을 떠났어요. 낯선 타지에서 매일 한국을 그리워하며 ‘옹알이’를 하는 아이 같은 생활을 했죠. 그러던 중 우리나라 청소년국가대표팀이 말레이시아로 원정을 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이들을 응원해야겠다는 생각에 말레이시아에 거주하는 교민들이 한데 모여 아리랑을 부르며 응원 했죠. 한국어로 아리랑을 목청 높여 불렀던 그때의 벅찬 감동은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한국으로 돌아온 뒤 그를 반겨주는 것은 아버지의 사업실패, 그로 인한 부모님의 이혼이었다. 경제사정이 급격히 나빠지자 결국 그와 그의 어머니는 1평 남짓한 고시원 단칸방으로 거처를 옮겼다. 어린 그에게 고시원에서의 삶은 마치 ‘벙어리’의 삶을 사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런 그의 생활에 돌파구가 된 것 또한 아리랑이었다.
  “지금 붉은악마 응원단이라고 하면 전 국민이 다 아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응원단이지만, 당시 제가 붉은악마 응원단을 만났을 때는 20명 남짓의 아주 작은 응원단이었어요. 고시원에서 나와 큰 소리로 아리랑을 부르며 우리나라를 응원하고 다닐 때는 마치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죠”
  아리랑을 발판 삼은 그의 끊임없는 외침은 ‘메아리’가 되어 울려 펴지게 된다.
  “2011년 아리랑이 중국문화재라는 등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세간이 시끄러웠을 때였어요. 관련 인터넷 기사에 덧글을 달며 분노를 표출하는 간접적인 방법 말고, 보다 직접적으로 내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은 없는지 진지하게 고민했죠”
  고민 끝에 그가 내린 결정은 아리랑을 알리려 세계 일주를 떠나자는 것이었다.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해 빼앗길 위기에 처해 있는 아리랑을 대한민국 청년들이 지켜내자는 의지를 담은 활동이었다.
  “세계 일주를 떠나기에 앞서, 저희의 계획을 점검해보고자 베트남 호치민국립대학교를 찾아 ‘아리랑 스쿨’이라는 교육활동을 진행했어요. 현지 학생들과 대금 연주로 아리랑을 불러보고, 서예를 통해 아리랑 가사를 적어보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죠”
  베트남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아리랑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됐다는 것이었다. 
  “더 큰 자신감이 생겼어요. 아리랑을 지키고자 시작한 일이었는데, 아리랑은 지켜졌으니 이제 우리나라의 아리랑을 알리며 세계인과 하나 되는 일만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본격적으로 그는 그와 함께 ‘아리랑유랑단’을 이끌어나갈 5명의 단원을 섭외했다. 국악, 서예 등 각 분야에 정통한 대학생들이었다. 이후 세계 일주를 위한 자금 1억 원을 후원받았고 의류, 신발, 노트북 등의 후원까지 성사시켰다.
  “각종 대외활동을 통해 이어왔던 귀한 인연들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어요. 아리랑유랑단에 대해 들으시고는 아낌없는 도움을 주셨죠. 인간관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어요”
  ‘아리랑유랑단’은 홍콩을 시작으로 위풍당당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이후 인도, 요르단, 이집트  등지로 이어지는 그들의 행보는 실로 놀라움과 뿌듯함의 연속이었다.
  “독일에서 파독 간호사분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죠. 직접 마련해주신 공연장에서 아리랑을 불렀는데, 아리랑을 들으며 간호사분들이 눈물을 흘리셨어요. 재외동포민이 가지는 아리랑에 대한 감정이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 알기에 저희도 함께 눈물을 흘렸죠. 슬픔과 환호가 함께 한 공연이었어요”
  물론 그는 후원을 비록한 모든 과정을 홀로 진행했고, 세계 일주 중에도 숙소 예약, 식사 제공 등 매니저 역할까지 도맡아 하다보니 활동이 벅차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러나 다양한 사람들 앞에서 아리랑 공연을 하고, 그들과 감정을 교류할 때마다 그의 고됨은 눈 녹듯이 사라지는 듯 했다. 공연을 하는 매 순간이 ‘아리랑유랑단’에게는 감동, 그 자체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는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았다.
  “아르헨티나에서 재외동포 2세들로 구성된 사물 놀이패인 ‘누리패’와의 시간을 가졌어요. 그들은 유튜브를 통해 한국 드라마를 보며 한국어를 공부하고, 장구가 없어 박스를 가지고 연습을 한다고 하더군요. 그 이야기를 듣는데 가슴이 참 먹먹했죠. 그 순간이 제가 꿈을 결정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어요. 문화적 혜택이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문화를 제공함으로써 그들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거든요”
  그가 ‘아리랑유랑단’을 통해 세계를 마음껏 누리며 다닐 수 있었던 것에는 그의 열정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저는 항상 경험에 목말라했어요. 대외활동, 아르바이트, 동아리 등 여러 가지 경험을 마음껏 누리는 가운데 꿈을 찾아갔죠. 특히 대외활동의 경우 우물 안에서 나와 전국 각지의 대학생들을 만나고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저의 끼를 펼치다보니 지금의 ‘아리랑유랑단’을 만드는 데 큰 힘이 됐어요”
  학생들을 향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이루고 싶은 꿈이 생겼다면 단순히 이를 꿈꾸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세요”
  20대에 이미 많은 경험을 하며, 성과를 이뤄낸 듯 보이는 그였지만, 이미 그의 발걸음은 ‘한국문화기획꾼’이라는 더 큰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가깝고도 먼 나라인 북한과 일본을 돌며 아리랑 문화소통을 지속하는 동시에, 아리랑뿐만 아니라 다양한 한국문화를 알리는 한글류랑단(줄임 : 한류 - 가칭)을 만들어 한국문화외교사절단이 되고 싶어요. 이를 통해 국악을 비롯한 한국 문화를 전공하는 친구들에게 해외공연과 같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하는 거죠”
2014년 청마의 해가 밝았다. 힘찬 청마의 움직임처럼 전진할 그의 행보를 응원한다.


김민경 기자

jjokkan0826@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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