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라면 꼭 봐야 할 영화”, “11분이지만 내가 본 애니메이션 중 최고다” 등 네티즌들의 엄청난 찬사를 받은 작품이 있다.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가 담긴 3D 애니메이션 <소녀이야기>다. <소녀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곳에는 김준기 감독의 열정이 담겨있다. 한국 애니메이션계에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20년 차 단편 애니메이션 감독 김준기. 최고의 작품을 탄생시키는 그는 차분히 빛나는 이력을 쌓아가는 중이다. 그의 진솔한 이야기를 지면에 옮겨봤다.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던 애니메이션과의 만남
어린 시절, 그에게 만화는 사춘기 학생들의 평범한 오락거리처럼 크게 의미 있는 부분은 아니었다.
“사실 저는 화학자가 꿈이었어요. 하지만 대학에 떨어지고 그냥 ‘취직이나 바로 해버리자’라는 생각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려고 했죠”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공주대학 만화과 진학을 추천했다. 프라모델을 만들고, 만화를 보고 그리는 것을 좋아하던 학창시절 김준기 감독의 모습을 눈여겨봤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버지의 권유로 만화과에 진학한 그는 대학생활의 낭만과 함께 만화의 세계에도 점점 빠져들었다.
“제 대학 생활은 한마디로 ‘망나니’였어요. 하지만 그런 수식어만큼 만화를 배우는 것에도 열정적이었죠. 만화를 다른 친구들보다 못 그린다는 생각에 더 치열하게 공부했던 것 같아요. 그림을 배우고 만화과를 진학했던 게 아니니까요”
대학 생활동안 쌓아온 만화에 대한 열정은 능력으로 이어졌다. 제대 후 지원했던 SF 단편 만화 공모전에서 2등을 차지한 것이다. 곧이어 멀티미디어 회사에서 그를 발탁하는 행운까지 뒤따랐다.
“운 좋게도 멀티미디어 회사에서 저를 스카우트 해갔어요. 2D, 3D 애니메이션의 기획과 제작에 참여를 했는데 그동안 만화만 그리던 저에게 처음으로 3D 애니메이션을 접하게 된 좋은 기회였어요”
홀로서기, 그 첫 번째 - 성공
처음 열 명 정도로 시작했던 회사는 그 인원이 급격히 늘어날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그는 어느 날부턴가 회사 생활에 답답함을 느끼게 됐다. 단순히 지겨움을 느껴서가 아닌 자신만의 창작품에 대한 열망이 그의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다른 사람들하고 일을 하는 것이 좀 성에 안찼던 것 같아요. 작품의 완성도도 떨어지고 여럿이 만들지만 작품 제작 속도도 느렸죠. 또 남하고 같이 일하면서 이런저런 제약도 많이 생겼고요. 그때 다른 사람들하고 내 전투력을 공유할 바에는 그냥 나 혼자서 나만의 작품을 만들기로 마음먹었어요”
5년 만에 회사를 그만겠다는 의사를 보이자 주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하지만 그는 자신 있었다.
“‘너 혼자 나가서 뭐할래?’ 이런 얘기들이 오갔을 때 사람들한테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게 잘못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보이고 싶었어요. 그래서 당당하게 말했죠. ‘단편 애니메이션 만들래요’라고. 나는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데 회사라는 틀에 갇혀서 내가 하고 싶은 걸 못하는 건 잘못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때 독립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회사에서 3D 애니메이션 제작 방법에 대한 기술도 터득했고 제가 생각하던 애니메이션 스토리가 콘텐츠로써 가치도 있다는 확신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1999년에 회사를 딱 그만뒀어요”
그렇게 회사를 나오고 1년 3개월에 걸쳐 만든 그의 첫 작품은 <등대지기>였다. 앞이 보이지 않는 등대지기가 마을 사람들의 괴롭힘과 무시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위해 추운 겨울 밤 불을 밝힌다는 내용을 담은 8분 50초 길이의 애니메이션으로 그의 첫 독립을 성공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그는 ‘2001년 동아 LG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대상’, ‘RESFEST KOREA 관객상’, ‘2002년 SIAF 관객상’을 수상했다.
“<등대지기>를 만들다가 막히는 부분은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큰소리치고 나온 만큼 잘 해내야 한다는 것과 100% 내가 다 짊어져야 된다는 것에 솔직히 부담감은 있었어요. 그래도 만드는 동안 굉장히 즐거웠고 결과도 다행히 잘 나와서 좋았죠”
홀로서기, 그 두 번째 - 방황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을 접하고 쉼 없이 달려온 김준기 작가에게도 유일하게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2006년 영화진흥위원회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그의 시나리오 <마지막 왕>이 대상을 수상한 때였다. <마지막 왕>을 수상하면서 자신감을 얻은 그는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을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애니메이션 제작에 투자해 줄 회사나 영화사를 여기저기 찾아다녔어요. 시나리오 대상도 받고 해서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이 이뤄질 줄 알았거든요. 그렇게 2년의 시간을 흘려보냈어요. 그러다가 문득 정작 제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제작은 손을 놓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진짜 제가 원하는 건 매일매일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거였는데 말이죠”
작업에서 손을 놓고 있었던 2년이라는 시간을 허송세월이라고 표현한 그는 그래도 그 시간 덕분에 장편보다는 단편 애니메이션이 잘 맞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위안부 할머니와 <소녀이야기>
2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낸 후 그는 다시 단편 애니메이션 제작에 열정을 쏟았다. 방황 후의 작품은 20년 전부터 구상하고 있던 <소녀이야기>였다.
“비교적 최근 작품이지만 <소녀이야기>에 대한 구상은 이미 20년 전부터 하고 있었어요. 제가 제대했을 무렵이 故 김학순 할머니께서 처음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을 하셨고 언론에서도 많이 비춰지던 때였어요. 그때는 그냥 지면에 만화를 그리며 공부하고 있었는데 ‘위안부 문제를 만화로 그려야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한동안 머릿속에서 생각만 하고 있다가 좀 더 구체화된 것이 3D 애니메이션을 공부하면서였어요. 외국 다큐멘터리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다루는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좋은 콘텐츠가 만들어지길 바랐죠. 그래서 3D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게 됐어요”
<소녀이야기>는 故 정서운 할머니의 증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다. 일본인에게 대항한 아버지의 옥살이를 면하게 해드리기 위해 일본에 일을 하러 간다고 생각한 정서운 소녀가 위안부에 가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로 그 당시의 고통이 잘 드러나 있다.
“<소녀이야기>는 고증도 어렵고 과연 이걸 해도 되나 고민도 많이 했던 작품이에요. 본격적으로 제작하기로 마음먹고 그 길로 곧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를 찾아갔죠. 무작정 ‘<소녀이야기>를 만들겠습니다. 할머니들 인터뷰를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정대협에 그런 식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또 괜히 잘못 만들어서 일본에 안 좋은 빌미만 제공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에 처음에는 거절을 당했어요. 하지만 제가 4분짜리 샘플 영상을 만들고 보여드렸더니 다행히 정말 좋아하시고 만들도록 허락을 해주셨죠. 그런데 만들면서 정말 가슴 아팠던 점이 있는데 할머님들의 증언과 관련된 부분이었어요. 할머님들의 증언 내용이 계속 바뀌었기 때문이죠. 너무 오래된 기억이고 사람들이 어떤 내용을 원하는지 아시니까 장소나 나이 같은 디테일한 부분이 사실과 다른 점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걸 할머님들을 탓할 게 아니거든요. 할머님들은 ‘잊어야 된다, 창피한 거다, 숨겨야 된다’라고만 생각을 하고 계시다가 갑자기 그런 악몽을 말씀하셔야 되고, 또 사람들이 조금 더 어린 나이에 조금 더 끔찍한 증언을 요구하기 때문에 계속 증언하시는 게 바뀔 수밖에 없었죠. 그분들의 기억을 우리들이 좀 더 지켜줬어야 하는 데 그러지 못한 것에 죄송하기도 하고 너무 안타까웠어요”
그의 계속된 노력 끝에 완성된 <소녀이야기>는 많은 네티즌들의 호평과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외교부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적극 제기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또한 일본군 위안부를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실상을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됐다. <소녀이야기>는 현재 한국어, 일본어, 영어, 스페인어 버전으로 제작돼 전 세계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있다.
“<소녀이야기>는 저에게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소중한 작품이에요.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서 달라진 점은 분명히 있죠. <소녀이야기>를 통해서 애니메이션에 종사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과도 소통의 기회가 열렸다는 점이에요. 덕분에 다른 작품들도 많이 알려졌어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소녀이야기>가 참 고마워요”
<환(Cycle)>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그는 다시 한 번 우리의 가슴 아픈 역사 이야기를 주제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있다.
“제목은 <환(Cycle)>이에요. 조선인 가미카제(제2차 세계대전 때 폭탄이 장착된 비행기를 몰고 자살 공격을 한 일본군 특공대) 대원이 야스쿠니 명부에 이름이 합산돼 있어서 자신의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계속 야스쿠니로 돌아와 전장으로 다시 출격한다는 내용이에요. 그래서 제목도 ‘환(Cycle)’으로 지었고요. 10월쯤 완성이 될 거라고 예상했는데 올해 말까지는 계속 작업을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는 자신이 쉬지 않고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원동력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영어 공부를 하든, 운동을 하든 3달 정도 지나면 지겨워져요. 작업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제가 계속 작업을 하는 건 하나를 완성했을 때의 기분을 알기 때문이에요. 온전히 저의 작품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니까 자식 하나를 더 낳는 기분이 들거든요. 누구든 좋아하는 일은 꾸준히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남의 틀에 자신을 끼워 맞추려고만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젊은 지금, 본인이 정말로 하고 싶은 것들은 시도를 꼭 해봤으면 좋겠어요. 그게 20대의 특권 아닌가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활화산 같은 열정을 요즘 젊은 친구들이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계속해서 새로운 이야기가 떠오른다는 김준기 작가는 벌써 지금 만들고 있는 <환>의 다음 작품까지 구상 중이다. “아마 조금 다른 시각으로 <소녀이야기> 다음 편을 만들지 않을까 싶어요”
만화를 좋아했던 평범한 소년은 어느새 한국인의 마음을 울리는 단편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성공을 거뒀다. 타인과 똑같은 삶은 버리고 자신만의 길을 선택한 김준기 감독이기에 지금 더욱 빛나는 것은 아닐까. 아무도 모르는 길의 끝을 향해 묵묵히 혼자 걷는 그의 길은 외롭지 않아 보인다.
최영은 기자
choyouneu@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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