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어본 일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겨울 내내 이러저러하게 불러도 좋을 만큼 작은 핑계들 사이로 제대로 된 책을 읽지 않았던 나에게, 줄리 포웰의 자전적 에세이집은 처음에는 가볍게 차안에서 시간을 때울만한 읽을거리였던 것이다.

‘줄리&줄리아’라는 이 책은 뉴욕 퀸즈의 작고 오래된 아파트에 사는 30세의 줄리라는 여성이 자신의 아무런 진전 없는 삶에 넌더리를 느끼는 데서 시작한다. 그녀는 어느 날 자신의 책장에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아무렇게나 꼽혀있었던 줄리아 차일드의 낡은 프랑스 요리책을 발견하고는, 자신이 이제까지 한 번도 그 책을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곧 줄리는 30세가 되도록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자신에게 524개의 프랑스 정통 요리의 레시피가 담긴 그 오래된 책의 모든 요리를 1년 동안 해보는 숙제를 낸다. 요리책에 있는 그대로 레시피를 차곡차곡 요리로 만드는 일은 ‘신선하고 풍부한 재료와 좋은 요리책이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것 아니겠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고, 저자인 줄리도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이 요리 항해를 시작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가장 간단해 보이는 프랑스 요리인 감자포타주에서부터 양고기 요리까지 그 맛있어 보이는 항해의 여정에는 수많은 실패가 담겨 있다. 그러나 그녀는 절대 그녀의 도전에 심각해하지 않는다.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줄리를 계속 요리 프로젝트를 진행시키게 한 힘이었을 것이다.

요즘 나는 단 한 번의 싫은 소리와, 실패와 같은 문제들을 직면할 때마다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고 심각하게 혼내기 일쑤다. 때로는 완벽하지 않아도 그것만으로도 뿌듯한 일이 있는 것인데, 잠시 그러한 생각을 지우고 살았던 것 같다.

이 책은 줄리의 블로그를 바탕으로 엮어져 있기 때문에, 성패에 따른 그녀의 히스테리와 자기반성, 그리고 웃음과 같은 사소한 감정의 변화와 기쁨의 추이 변화가 잘 드러나있다.

또한 인터넷이라는 무한한 공간에서 익명의 사람들은 그녀의 노력에 응원을 보내주기도 하며 1년 동안 줄리의 도전을 지켜보는 부분도 따뜻하다.

물론, 조금은 어색한 번역체와 생소하다 못해 맛을 상상하기 어려운 요리들이 책 전체에 가득해서 처음에는 책에 빠져들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이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성공 스토리는 충분히 즐겁기 때문에 매력적이다. (줄리의 이 자전적 에세이는 영화로도 개봉되었다.)

때때로 인생의 변화는 거창한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책장에 꼽힌 낡은 문고본으로도 찾아오는 지도 모르겠다. 몇 번의 봄을 대학에서 보냈고, 다시 또 봄이 오고야 말았다. 매일같이 더 따뜻한 햇살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데도 그저 심란하기만 한 자신에게 벚꽃이 만개하기 전, 거창하진 않지만 ‘할 수 있겠는데’라는 변화를 주고 싶다면 추천한다.

단, 음식 이야기가 참 많으니, 맛있는 뭔가를 옆에 두고 보길.

충북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2005007013 양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