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살장의 책’에서 저자 이승우는 과감히 말한다. “모든 사물은 부패한다. 삶이 곧 부패하는 과정이다. 이 모든 것은 시간의 작용이다.”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이는 이야기다. 살아가는 과정은 곧 죽어가는 과정이다. 열역학 법칙이 그것을 잘 증명해 준다. 그 인간의 삶이 어떠했든 죽은 뒤에는 시체가 되고 부패하기 마련이다. 모든 사물이 그러하듯이, 끝과 끝을 이어보자면 일단 그렇다. 그러나 이승우는 어쩌자고 삶을 부패하는 과정이라 표현하는가? 작중에서 그는 대답의 근사치를 꺼내 놓는다. “삶은 휴식이고, 이 지상은 계류장에 지나지 않는다. 계류장인 이 지상에서 짧은 휴식을 취하며 다가올 죽음을 기다린다.” 부패를 통해 우리의 삶과 지식이 무화(無化)되면, 어쩌면 그 다음에 무엇인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삶과 지식은 언젠가 폐기되는 것. 폐기되면 회복하지 못한다. 우리가 쌓아나가는 것들은 단지, 부패하는 것이다. 이 사상은 이 소설의 전제가 된다. 도살장의 계류장 위에 세워진 도서관이라는 작품 배경은 이상의 전제를 이끌어내는 데 안성맞춤이다. 그 안에 기증이라는 이름으로 투기된 책들은 조용히 부패한다. 한 번 폐기된 그들의 지식을 그러안고 조용히 무로 돌아가는 책들의 도살장. 전제와 배경이 암시하듯 이 작품의 핵심적인 짜임은 모순병치다. 도살장 옆에는 계류장이 있고, 지식의 장인 도서관에서는 책들이 죽어 간다. 이승우는 각각의 모순을 가까운 곳에 배치하고 그것들을 놀라운 방식으로 일치시킨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중반부에서 후반까지 한 번 더 시도되는 모순병치는 앞의 사상을 전혀 포괄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중반을 지나 천편과 사서에게 집중된다. 도살자와 순결한 양의 만남이다. 순결의 모순성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대목에서 이승우는 그 모순관계를 정합적으로 나열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모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설명하길 포기한다. 당연하다. 순결에 대한 이야기는 앞에 제시된 집약적 사상과 전제와 소극적인 관계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야기는 흐지부지되고, 마지막에 절정으로 치달은 텐션은 그저 공허하기만 하다. 두 테제가 모순된 관계에서 등장한 것이 아니라 모순되는 두 테제가 각각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이승우의 순결에 대한 모순이 꼭 부패의 모순과 연결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도살자와 짐승의 관계까지 발전하지는 못한다. 둘을 포괄하는 집약적인 단서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두 테제는 수많은 형식으로 설명될 수 있으나 서평의 처음에서 지적하였듯 그 해석엔 공허함만 남을 뿐이다. 순결은 더럽혀지기 위해 있는 것인가? 이승우는 이 모순의 난해성을 증명하기 위해 일부러 그 연관을 포기한 것일까? 여러분도 한번 읽으며 생각해 볼 문제다.

철학과 06 황종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