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쿤데라 지음(출판사 : 민음사, 1999)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평범한 대학생 루드빅은 당의 연수교육에 참가한 여자 친구에게 농담조의 엽서를 보낸다.그는 엽서의 내용 때문에 당의 심문을 받고 제명된 이후, 정치범으로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군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15년이 흐르고, 루드빅은 자신을 당에서 제명시킨 제미넥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그의 아내 헬레나를 유혹한다. 루드빅은 헬레나를 성적으로 정복함과 동시에 제미넥에 대한 복수를 완성했다 생각하지만, 헬레나와 제미넥이 사실상 이혼한 상태와도 같다는 소리에 절망을 느낀다. 자신을 지탱하게 만든 복수라는 것에 대해 허무함을 느낀 루드빅이 고향의 민속음악축제에 참가해 옛 친구와 연주를 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루드빅의 어설픈 복수극이 큰 줄기라면, 민속음악에 자신의 인생을 바치지만 세대 교체와 함께 맥이 끊기는 것을 바라보며 쓰러지는 야로슬라브, 남편과 루드빅에게 버림받고 화장실에서 탈진한 헬레나 등 등장인물의 이야기가 겹쳐진다.
 루드빅은 원래 농담을 즐겨하는 인물이다. 루드빅을 심문하고 그에게 반대표를 던진 사람들 역시 그것이 농담이라는 것을 안다. 단지 그들이 속한 사회라는 것이, 그들이 살고 있는 시대라는 것이 그런 사사로운 농담 하나도 그냥 넘겨버릴 수 없는 것이기에 루드빅을 절망으로 내몰고 그에게 허무한 복수만을 꿈꾸게 만든 것이다.
 루드빅은 그 사회의 희생양이다. 아주 사소한 농담하나 통용되지 않는 사회. 연인에게 보낸 단 세 줄의 엽서로 인해 자신의 젊음과 자유를 어두운 탄광에서 보내게 만든 사회. 헬레나를 남편에게 버림받게 만든 사회. 복수의 희생양으로 여자를 이용하지만 오히려 자신이 이용당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사회. 모래성과 같은 복수를 꿈꾸게 만든 사회.
 루드빅은 탈진한 헬레나를 뒤로한 채 정처 없이 길을 걷는다. 그리고 어릴 적 함께 민속음악을 연주했던 친구를 만나 자신을 연주회에 넣어달라고 부탁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변질된 민속음악에 경멸과 멸시를 보냈던 루드빅. 그는 대중에게 멀어지고 당의 선전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버림받은 민속음악을 마치 자기 자신처럼 바라본다. 그리고 연주의 황홀경에 육체와 영혼을 맡김으로써 자기 자신을 용서하고 루치에를 용서하고 모든 것을 용서한다. 루드빅의 복수라는 것은 이렇게 허무하다. 아니, 세상의 모든 복수는 다 허무하다. 복수는 그것을 계획하고 꿈꾸는 시간에만 가치가 있는 것이고, 실행하는 동시에 환상은 사라지고 모든 것이 허무로 끝이 난다. 실컷 이용당하고 버림받고 비웃음을 사고 결국은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루드빅. 자살을 계획했으면서도 어느 정도 자신이 살 수 있는 시간을 계산 하고 약을 삼킨 헬레나처럼, 루드빅의 눈에 비친 세상은 모순되고 부조리하다. 그런 세상을 감싸 안아 보듬어 주며, 그렇게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는, 엉망으로 망가진 루드빅의 복수에 위로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