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5월 22일자 신문에는 충북대 신문 창간 42주년을 맞아 60년대 대학 신문사의 모습을 담은 기사가 실려 있었다.
60년대 대학 신문사에서는 국어, 영어, 상식을 시험과목으로 정하고 수습기자를 뽑았다. 그리고 편집국장, 업무국장, 편집주간 교수까지 합쳐서 5명이 전부였다. 월 1회, 회당 4면으로 발행부수는 1000부 정도였다. 편집회의는 발행 이틀 전, 편집위원 교수 3명과 편집주간, 편집국장, 업무국장을 포함해 신입기자까지 합쳐 총 8명이 시내 중국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회의를 했다. 신문인쇄는 주로 서울, 남대문 부근에 있었던 일요신문사의 신세를 졌고 이후에는 청주 상당인쇄소를 이용했다. 가끔 일요신문사의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일요신문사의 자매지인 산업경제신문에서 찍기도 했다. 저녁나절 신문을 서울역에서 배송하고 다음날 신문을 과별로 전달하고 정기 발송처에 우송했다. 당시 광고에 대한 인식이 희박하여 유료 광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고 몇 안되는 서점과 과학기자재 판매상, 양복점 등이 유일한 광고처 였다.
반면 오늘날에는 수습기자 모집에 논술과 면접이 시험과목으로 등장했고 수습기자만 해도 5명이 된다. 기자와 편집주간을 비롯한 교수까지 합친다면 15명에 달한다. 또한 월 2회, 회당 12면, 발행부수는 무려 8000부에 달한다. 또한 편집회의는 발행일 다음날인 화요일에 토론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 다음 주는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새벽 이슬을 맞으며 퇴근하기도 한다. 신문 인쇄는 청주인쇄소에서 하고 있다. 신문이 도착하면 아침 7시 40분부터 각 대학으로 신문을 배송한다. 또한 오늘날에는 다양한 곳에서 광고 게재의뢰가 들어온다.
한편 발행부수는 적고 전면 기사판이던 그때 그 시절 신문과는 다르게 오늘날의 신문은 학우들에게 다양한 정보 및 흥미로운 소재를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재미있는 광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또한 대학 구성원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왁자지껄과 같은 독자 참여란을 만들고 있다.
그때 그 시절, 신문사에서는 대학 구성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좀 더 나은 신문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대학 곳곳을 발로 뛰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좀 더 나은 신문을 만들기 위해 새벽까지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이처럼 신문사는 교내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학생들에게 전하게 위해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 10년, 20년 독창적으로 변해가는 신문사의 내일이 기대된다.
이희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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