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방영됐던 <슬기로운 감빵생활>이라는 드라마에선 재판장이 추가적인 조사 없이 범행에 대해 검사가 명시한 공소장의 죄명만으로 형을 확정함으로써 누명을 쓴 유대위(정해인 분)와 고박사(정민성 분)는 그대로 형을 살게 된다. 이러한 억울함을 방지하기 위해 재판장을 대신해 범행 이후 각 사건의 구체적인 진행 상황을 파악하는 사람들을 ‘법원 조사관’이라 한다. 그들은 양형 심리상 필요한 기본 조사사항에 관해 조사하는 일을 주로 맡는다. 공정하고 투명한 재판을 위해 힘쓰는 법원 조사관에 대해 알아보자.
사건 기록으로 시작하는 하루
A 법원 조사관(이하 조사관)은 국가직 공무원으로, 아침 9시에 지방법원으로 출근해 산더미 같은 사건기록, 조사대상자에 대한 조사요구 등의 서류와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재판장은 A 조사관에게 조사가 추가적으로 필요한 사건을 배당해준다. 자료가 부족해 판결이 애매한 사건에 대해 재판장은 피해자와 피고인에 대한 양형 조사를 조사관에게 요구하게 된다. 양형 조사는 ▲피해자 관련 사항 ▲ 피고인 관련 사항 ▲범죄수익 관련 사항 ▲합의 및 피해회복 관련 사항으로 구분되는데, 재판장은 네 가지 항목 중 필요한 조사항목에 표시해 조사관에게 조사를 요구한다. 양형 조사 방법으로는 면담, 출장, 전화 조사 등이 있다. 조사관은 우선 조사대상자에게 연락해 면담 조사가 가능한지 여부를 파악하고, 가능할 시 조사대상자를 법원 조사실로 소환해 조사를 진행한다. 면담 조사를 거부한 조사대상자는 전화상으로 조사하고, 수감 돼 있는 피고인의 경우는 직접 출장을 가 조사를 한다. A 조사관의 주 업무는 사무실에서 배당된 사건을 파악하고, 전화 조사를 하거나 조사대상자를 소환해 조사실에서 면담 조사를 수행한 후 관련 정보를 서류화해 재판장에게 양형 소견을 피력하는 일이다.
A 조사관은 “일과를 마무리해도 사실 머릿속이 복잡하다. 조사대상자와 연락이 닿지 않아 조사하지 못하거나 피해자의 합의 의사가 전혀 없는 경우 해결 방법을 고심하며 남은 하루를 보낸다”고 전했다.
법원 조사관의 장·단점
조사관은 세상 어디에도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고 믿어주는 사람이 없어 입을 다문 피고인, 범죄 당시를 떠올리는 것조차 힘겨워 조사를 회피하는 피해자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A 조사관은 “조사하다 보면 비협조적인 피고인이나 피해자를 만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주며 그들에게 신뢰를 주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조사관이 경청하는 태도로 피해자와 피고인에게 신뢰를 주고 조사를 유도해 조사한 내용이 재판에 반영되면, 해당 피고인과 피해자가 전화를 걸어 감사를 표하기도 한다. A 조사관은 “‘조사관님의 진심 어린 말 한마디에 많은 위로가 됐어요. 정말 감사합니다’라든지 ‘그때 제 얘기를 믿어주고 경청해주신 분은 조사관님뿐이에요. 이 은혜 잊지 않고 착하게 살겠습니다’라는 감사 인사를 전해온다. 이런 전화를 받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끼고 조사에 더욱 충실하게 임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양형 조사제도가 법제화되지 않아 조사관들은 조사 시 시간·재정 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국회에서 양형 조사제도의 법제화를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지속적으로 발의됐으나, 번번이 법무부와 국민의 반대로 무산됐다. A 조사관은 “현재 <법원조직법> 제54조의3에만 근거해 조사관 업무를 수행하고 있어, 교도소 수감 중인 피고인은 일반 접견시간인 10분 이내에 양형 조사를 마쳐야 하는 상황이라 형식적인 조사에 그칠 수밖에 없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이어 그는 “아직까지 양형 조사 시 시간과 재정상으로 많은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조속한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법원 조사관이 되려면
A 조사관은 “양형 조사는 피고인의 범행 이후 여러 가지 상황들을 조사해 피고인의 적절한 양형과 공정한 재판을 위해서 필수적인 제도이므로 앞으로 재판에 많은 활용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법원 조사관이 되기 위해서는 ▲심리학 ▲교육학 ▲사회학 ▲의학 등 전문적인 지식을 기초 소양으로 지니고 있으면 유리하다. 국가직 공무원에 속하는 조사관은 졸업한 학과에 상관없이 법원서기보(9급 공채)나 법원행정고등고시(5급 공채)에 합격하면 될 수 있다. 우리 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관련된 법률적 지식을 쌓거나 우리나라 법률에 관심이 있다면 더 유리하다. 또 확실한 조사를 위해 피고인에게는 진실한 관심, 존중, 인내, 신뢰의 태도를, 피해자에게는 그의 입장에 공감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보이는 능력이 중요하다. 더불어, 무엇보다 사람을 잘 대하는 것이 관건인 직업이기 때문에 심리학을 전공하면 일이 더욱 수월하다.
주의해야 할 점은 피고인에 대한 편견이 있어 피고인을 편협적으로 대하면 안 되고 피해자와 피고인 사이에서 중립적인 입장을 잘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조사관은 개인의 직감에 좌우돼 조사 결과를 판단해서는 안 되고 판단에 이른 논거를 충분히 제시해야 한다. A 조사관은 “특별한 조건 없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직업이지만, 최종적으로 자신에게 ‘감정을 절제하고 피해자와 피고인에 대한 조사에 얼마나 충실히 임할 수 있나’라는 질문을 던져봤으면 한다”고 전했다.
조사관은 재판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지만 공정하고 투명한 재판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조사가 진행되며 조사관의 말 한마디에 피해자나 피고인의 마음이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에게 위로가 될 수도, 피고인의 인생에 길을 열어 줄 수도 있는 조사관.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직업을 찾는다면 도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정은서 기자
thdrkd9934@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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