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땅을 보고 길을 걸어 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단 한번이라도 볼록 튀어나온 특이한 보도블록을 쳐다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점자블록이라고도 불리지만 사실 이 블록의 이름은 시각장애인 유도블록이다. ‘이게 뭐라고’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한 면에 30cm 인 이 작은 블록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정말 소중한 눈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또 하나의 눈, 시각장애인 유도블록은 청주에 얼마나 잘 설치되어있을까? 사창 사거리부터 청주 시내까지 조사했다.

사창사거리 : 대학생이 시각장애인일 수 있는데
시각장애인 유도블록의 설치정도를 알아보기 위해 첫 장소로 정한 곳은 바로 대학교가 인근에 있어 가장 붐빈다는 사창사거리 롯데리아 앞이었다. 일반 보도를 비롯해 횡단보도로 향하는 길 바로 앞부분까지 유도블록은 존재하지 않았다. 조금 더 걷자 이번엔 볼라드(bollard)가 유도블록 바로 위에 올려져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차량 진입 방지용으로 설치한 볼라드는 높이가 무릎보다 낮은 것이 대부분이라 비장애인도 앞을 보고 걷지 않으면 걸려 넘어질 수 있다. 횡단보도 2개를 지나야 하는 안전지대도 마찬가지였다. 시각장애인은 남의 도움 없이 그곳을 절대 지나갈 수 없다.
 
중앙여고 : 도로로 이끄는 유도블록
중앙여고 쪽은 어떨까. 선형 블록을 흉내 내어 일반 보도블록에 볼륨을 주어 두 개를 겹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간에 방향이 틀어져 있거나 일반 규격에 맞지 않는 것이 대다수였다. 길이를 재본 결과, 선형 블록을 흉내 낸 블록의 한쪽 길이는 기존 유도블록에 비해 반이나 짧았다. 맨홀 뚜껑 주변에 시멘트를 발라 유도블록이 2미터정도 끊긴 곳도 있었다. 횡단보도나 새로운 진입로가 없는데 진행 방향을 알리는 선형 블록을 설치한 곳도 있었다. 시각장애인이 그 선을 따라간다면 도로 한가운데에 서게 된다.
 
청주 체육관·사직사거리 : 없거나 엉터리거나
청주 체육관 정류장 쪽은 아예 유도블록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사직사거리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작년에 새로 지어진 고층 아파트 앞 보도를 살펴봤다. 자전거도로와 일반 보도를 구별하기 위한 경계보도가 일반 보도블록으로 놓여있었다. 가다보니 아예 자전거 도로용 보도를 경계보도로 깔아놓고 선만 그어놓은 곳도 있었다. 경계보도로 쓰이는 블록은 유도블록을 사용하거나, 일반 보도블록과는 재질이나 색깔이 다른 것을 사용해야한다. 물론 보도마다 다른 색깔이 칠해져 있었다. 하지만 시각 장애인이 이걸 어떻게 구별할까?
 
청주대교·시내 : 걷기를 방해하기 위한 설치
청주대교를 지나 영화관으로 통하는 길목을 보니 횡단보도의 진행 방향과 나란히 설치되어 있어야 할 유도블록이 엉뚱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것 또한 지팡이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시각장애인을 도로 위로 내몰 수 있다. 시내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도청부터 가보니 유도블록이 잘 설치되어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도청 문을 나서면서부터다. 유도블록은 없었고, 있어도 주차방지용 러버콘(rubber cone)이 위에 놓여있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실태 조사 결과 나타난 큰 문제점 몇 가지를 선별해보니 다음과 같았다. 첫 번째로는 횡단보도로 통하는 보도 끝에 유도블록이 없던 것. 두 번째로는 유도블록의 규격이나 재질을 무시하고 설치된 것. 세 번째로는 잘못된 방향으로 유도블록을 설치한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버스 정류장에 유도블록이 설치되어있지 않은 것이다. 버스 정류장 유도블록 설치 문제는 조사당시 어느 버스 정류장에도 유도블록이 없었기에 의심을 하지조차 못했다. 하지만 실태 조사 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2010.06.30,국토 해양부 개정)’을 확인한 결과, 버스 정류장 앞에 선형 블록과 점형 블록을 병설하거나 점형 블록만 길게 설치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조사결과를 확인한 충북시각장애인연합회 박상명 사무국장(35·사회복지사)은 예상한 결과라고 했다. 박 사무국장은 “관공서는 의무적으로 유도블록을 설치하지만 다른 곳은 설치를 하지 않아도 그것을 제재할 수 있는 강제적 조항이 없는 것이 문제다. 벌금도 없어 아무리 강요해도 먹히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라고 밝혔다.(옆 관련 기사 참조) 실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에 점자, 안내방송시설과 같은 이동편의시설 설치조항을 어길 시에 벌칙 및 벌금을 부여한다는 조항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단지 어떻게 설치를 해야 한다는 시행규칙만이 있을 뿐이었다. 점자도서관인 무지개도서관의 김용태 실장(34)은 “그나마 요즘엔 나아진 것이다. 예전엔 이것보다도 못했다. 애초에 불편함을 느끼는 시각장애인들이 집밖으로 나오지 않으니 유도블록 문제의 심각성을 더 모를 수밖에 없다”라고 말하며 시각장애인이 자유롭게 밖을 활보할 수 없는 현실을 이야기했다.
이에 대해 흥덕구 건설교통과 관계자는 “보도를 지을 때 시설심사를 해서 유도블록이 잘 깔려 있는지 확인한다. 그런데 보도를 짓기 전 땅 밑 매설물 공사를 하면서 지반침하가 생길 수도 있고, 그에 따라 유도블록이 훼손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라고 말하는 한편, “유도블록이 보도를 지을 때 아예 설치가 안 되어 있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라는 말을 남겨 기자의 고개를 갸웃하게 했다. 하지만 그는 “나도 유도블록과 같은 편의시설 설치에 대한 강제조항이 없다고 알고 있다. 사실 그것 때문에 공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있을 것”이라고 밝히며 법 조항의 허술함을 인정했다.
장애인 복지법 제 2조에 따르면, 장애인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으며,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 또한 9조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고 보호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 기본적인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박 사무국장이 말했다. “길은 모든 사람들이 다니는 것이다. 그럼 당연히 시각장애인도 걸을 수 있어야 한다. 시각장애인이 어디는 못 지나가고 어딘 지나가고 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유도블록은 모든 곳에 다 설치가 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가 하루에 수없이 지나다니고 있는 이 길. 하지만 시각장애인들은 지금도 걷지 못하고 있다.
 

고수진 기자

switch5@cbnu.ac.kr
 

1)볼라드(bollard)는 자동차가 인도(人道)에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차도와 인도 경계면에 세워 둔 구조물이다. 또는 부두에 커다란 배들을 묶어 두기 위해 설치한 말뚝 모양 구조물을 일컫기도 한다. 이외에도 통행 주체의 움직임을 제어하기 위해 말뚝형으로 설치한 구조물들을 가리키기도 한다.
 
2)러버콘(Rubber Cone)은 공사장 등 차량 진입을 막기 위해 세워놓는 빨간색 원뿔 모양 구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