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 살았어요. 누가 공장에 데려가서 돈도 벌게 해주고 기술도 가르쳐준다 했죠. 그래서 부모님한테 말도 안하고 그 치를 따라 갔어요. 아무도 내가 어디로 갔는지, 언제 사라진 것인지도 몰랐죠” 할머니(81)는 그렇게 일본군위안부가 되었다.
그 당시 할머니의 나이는 13살이었다. “그곳에 끌려가고서 울면서 집에 보내달라고 하고 제대로 말도 안 들으니까 마구잡이로 때리고, 굶기기 일쑤였지요” 모르는 이에게 끌려가게 돼 일본군위안소에 있으면서 군인들의 성행위 요구를 거부할 때면 돌아오는 것은 주먹과 발길질뿐이었다고 한다. “그 때 성병에 걸려 수술하게 됐는데 나팔관까지 건드려 평생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돼 버렸지요” 할머니의 삶은 한 여자의 인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가혹하고 참담했다.
우연히 강연회에서 듣게 된 할머니의 인생은 책으로만 보고 뉴스와 매체를 통해서만 접하던 바로 그 이야기였다.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는 설움이자 한맺힌 역사의 길을 걸어온 한 사람의 생생한 증언이었다. 말씀 도중 울먹이시는 할머니의 모습에 함께 이야기를 듣던 몇몇 사람들도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보였다. 그 일을 당했다는 것이 부끄러워 한평생을 숨어서만 살아왔지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아본 적 없다고 말씀하시는 할머니의 그 모습은 바로 우리의 과거이자 현재이며 어쩌면 미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계속 이렇게 말씀하셨다. “앞으로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젊은이들, 그리고 바로 대학생들밖에 없어요. 우리의 과거를 제대로 밝히고 일본의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서는 이제 젊은이들의 힘이 필요해요” 젊은이들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하다고 하시는 이와 같은 할머니 앞에서 필자가 느껴지는 것은 부끄러움뿐이었다.
‘젊은이들이 믿음직스럽다고 말씀하시는 할머니 앞에서 그저 부끄럽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자기밖에 모르는 젊은 사람에게 무엇을 보고 믿음직스럽다고 말씀하시는 것인지, 지금의 대학생들이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알고서 저렇게 말씀하시는 것인지 부끄럽고 죄송할 따름이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필자가 수첩에 끼적거렸던 메모 중의 일부분이다. 물론 사회 비주류이자 약자인 그 분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지금 당장의 내일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외면해 온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 때문에 더욱 죄스럽고 부끄러웠다.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것을, 그들 덕분에 우리가 지금의 풍요로움을 누리며 살 수 있다는 사실은 그 누구라도 반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이 살아온 삶이 우리의 과거이자 역사임을 잊게 된다면, 그리고 잊어간다면 모든 이들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앞에서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필자가 그랬던 것처럼.








조아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