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대신문방송사 충북대신문 The Chungbuk Times 교육방송국
전체기사종합취업대학사회광장사람특집문화동영상뉴스포토&만평학술현상공모전문학
최종편집 : 2026.09.07 월 19:58
광장
광장 섹션
확대축소프린트
 신문사
<기고문> 개신단(開新壇)과 과유불급(過猶不及)
제 993 호    발행일 : 2026.04.13 

유인호(충북대학교 명예교수회 회장)


  정년을 맞은 지가 꼭 10년하고도 한 달이 지났다.
  옛말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충북대학교 캠퍼스는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하다. 그런데 참으로 많이 변했다. 2020년 봄부터 <명예교수회 소식지>에 3회에 걸쳐 연재한 “캠퍼스 수목 순례기”에 밝혔듯이, ‘은하수식당’에 밥 먹으러 종종 오는 편이고, 강단은 오래전에 떠난 바람에 건물 안인 교실은 잘 모르지만, 산책하는 교정은 비교적 익숙한 편이다.
  ‘역사관’이 생기고, ‘행복담길’이 생기고, ‘연리원’이라는 정원도 생겨 곳곳에 (꽃)나무를 심고 산책길을 만들어 정성을 들인 흔적이 보인다. 어느 날 행복담길의 가장 위쪽 데크길을 지나 80년대까지 대학본부였던 지금의 박물관 건물 앞의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는, 70년이 지났어도 멀쩡한 계단을 통해 그 옛날 강당이 있었던 개신단(開新壇)을 가보았다. 사방이 탁 트인 캠퍼스에서 가장 높다란 산언덕에, 50년대 중반 충북대의 건설자들은 대강당을 지었다. 그리고 주변에 꽃 같다는 측백나무인 화백(花柏)을 빙 둘러 심었다. 목조건물인 강당은 노후되어 철거되었지만, 이구동성 명당 터라고 말들을 하고, 훼손하면 안 된다는 개신단은 둘레 숲과 잘 어울리는 잔디를 심어, 보기 드물게 아늑한 잔디광장을 만들었다. 개신단 서쪽 둘레에 심은 화백들은 ‘힘차게 자라나’ 아름드리 풍만하고 건장한 위용을 자랑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개신단 동쪽의 화백들과 동쪽 숲의 한 아름이 넘는 상수리인 참나무(眞木)들이 말라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었다. 강의와 연구에 여념이 없을 현직 교수들보다 시간적 여유가 있는 일부 명예교수들이 현장을 가보고 경악했다. 마침내 지난해 9월 21일 60명의 명예교수가 총장에게 개신단 숲의 나무들을 살려달라고 연명으로 청원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9월 28일 당시 고창섭 총장은 문제를 인지하고 시정하겠다고 후원의 밤 행사에서 공개적인 답변과 약속을 했다. 나무들이 죽고 또 죽어가는 이유는 명확하다. 학내 발생 낙엽을 누적해서 같은 곳에 버렸기 때문이다. 동쪽 사면에다 위쪽에서 해마다 덤핑을 해 낙엽이 썩어 분해될 겨를이 없고 겹겹이 쌓여 1~2m의 두께로 쌓였다.
  모든 숲에는 낙엽이 쌓이고, 해마다 다시 썩어 분해되어 순환되고 나무의 성장을 돕는다. 처음부터 숲에다 넓게 펼쳐 흩뿌려주거나 했으면 큰일은 없었을 것이고, 나무도 더 잘 자랐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은 낙엽을 한곳에 쌓아 다져놓은 게 화근이었다. 낙엽 등이 썩을 때는 열이 발생한다. 높이 쌓일수록 엄청난 열이 생긴다. 즉, 나무의 뿌리들은 지표면과 가까이 사방으로 뻗는데, 지표면의 열은 땅을 메마르게 만들어서 뿌리를 전부 말라버리게 하고, 결국은 나무 전체가 말라 죽는다. 그런 연유로 더 이상 투기하지 말고 이미 버린 것, 두껍게 쌓인 것을 다시 걷어내야 한다. 처음에는 아마 낙엽들이 썩어서 거름이 될 것이라고 버리기 시작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지나치게 많이 버렸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고, 모자람만 못하다고 옛 성현은 말했다. 지나치면 모든 것이 문제가 생긴다. 과식(過食), 과로(過勞), 과욕(過慾), 그리고 과적(過積).
  개신단의 숲이 죽어가는 문제는 낙엽이나 제초 후 부산물의 과잉 투기(投棄), 즉 대지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쌓아놓은 과적(過積)이 문제다. 학내 곳곳 숲마다 비슷한 문제가 생겼다.
  무엇보다 개신단은 부지의 역사로 보면 충북대 캠퍼스의 중심이다. “새 역사 창조할” 수많은 학생과 교직원이 중요 행사 때마다 함께 모였던 곳으로 개신인의 추억이 서린 곳이다.
  개신단 숲을 살려야 대학도 바로 선다. 행동하는 지성만이 숲도 살리고 학교도 살린다. 왜냐하면 “특정한 자연적 사실은 특정한 정신적 사실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5.jpg
6.jpg
목록보기
최근기사
D등급에서 9월 투표까지, 충북대·교통대 통...
학생들의 선의 노린 포교 수법, 개인정보 제...
<양심의 빈자리> 학내 공용공간, 잘 사용하...
고물가 시대, 학교 주변에서 찾은 가성비 밥...
원청교섭 나선 정부기관, 노란봉투법 현실은....
광장 More
<기자 보다> 빛이 나의 안에 있다면 그림자는 생기지 않...
<데스크칼럼> 절차 무시한 선거가 남긴 신뢰의 공백
<충슐랭가이드> 독서의 계절에 만나는 책과 카페 ‘인문아...
<기자보다> 여름이라는 유예기간, 우리는 어떻게 존재해야...
<데스크칼럼> 서툴고 투박한 내 언어의 가치
<츙슐랭가이드> 익숙한 골목에서 만난 뜻밖의 여정, ‘운...
<기자 하다> 어둠을 뚫고 한라산에서 맞이한 새해, 한계...
<데스크칼럼> 학점이 배움을 삼키다
<충슐랭가이드> 쉼표가 있는 삶, ‘초정치유마을’
<기고문> 개신단(開新壇)과 과유불급(過猶不及)
전체기사 종합
취업
대학
사회
광장
사람
특집
문화
동영상뉴스
포토&만평
학술
현상공모전
문학
동영상뉴스
수습기자모집
PDF자료실
지난호보기
신문사 소개 기사제보 독자참여 개인정보 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

28644 충북 청주시 서원구 충대로1, 충북대학교 신문방송사(발행인 : 직무대리 유재수 | 주간 : 이장원 | 부주간 : 신꽃비)

행정실 : 043-261-2934    충북대신문 : 043-261-2936    The Chungbuk Times : 043-261-2935    교육방송국 : 043-261-2953

Copyright ⓒ 2008 충북대학교 신문방송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