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일본 드라마 특유의 가을 같이 서늘한 색감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TBS에서 방영했던 법의학 드라마 <언내추럴>을 매우 좋아했던 나는 비슷한 결의 드라마를 추천하는 영상을 통해 처음으로 <언멧: 어느 뇌외과의의 일기>를 접하게 됐다. 아침드라마 단골 주제였던 ‘기억상실증’이라는 설정값은 사실 우리에게 크게 낯선 소재는 아니다. 하지만 기억상실증이 있는 주체가 뇌외과 전문의라는 점에서 이 드라마가 나에게 색다르게 다가왔고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지 기대감이 생겼다.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언멧: 어느 뇌외과의의 일기>는 뇌외과 의사 ‘카와우치 미야비’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미야비는 1년 반 전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 사고 이전 6개월부터 오늘까지 약 2년간의 기억을 잃게 된다. 즉 오늘 있었던 일을 내일이면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장애(기억상실증)를 가지게 된 것이다. 미야비는 매일 아침, 사고 이후부터 직접 쓰기 시작한 일기를 읽으며 지난 2년을 기억하기 위해, 또 오늘을 의사로서 살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뇌외과 의사가 기억장애가 있다는 설정은 ‘기억하지 못해도 사람은 본인의 일을 계속해 갈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생기게 한다. 처음에는 어제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수술을 집도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극 중에서 미야비는 본인이 집도의로 서게 될 수술의 시작부터 끝마치는 과정까지를 반복해 연습하며 몸으로 감각을 익히려 노력한다. 머리로는 어제를 기억하지 못해도 몸은 기억할 수 있다는, 이른바 ‘머슬 메모리’의 가능성을 믿으면서 말이다. 이러한 모습은 기억이 사라졌다고 해서 한 사람이 살아온 시간과 노력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자신을 믿기 어려운 순간에도 우리 안에는 분명히 그동안의 경험과 힘이 남아 있다고, 그걸 믿으면 된다고 가르쳐 주는 것 같다.
또한 미야비는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기억장애가 있는 미야비가 집도의로 다시 서기까지는 여러 주변 사람의 믿음과 응원이 있었다. 수술은 집도의 한 사람만의 힘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보조의, 간호사, 마취과 의사 등 여러 의료진이 함께한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혼자서만 완벽해지려 하지 말아요”라는 대사는 그래서 더 깊게 다가온다. 우리 삶도 나 혼자 만들어 낸 결과가 아니다. 자신을 믿지 못하는 순간에도 나를 믿어주고, 내가 해 온 일을 증명해 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기에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드라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빛과 그림자에 대한 대사가 나오는 장면이다. “빛을 비추면 그림자가 생긴다. 우리는 어두운 곳에 빛을 비추면 세계가 밝아졌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그림자가 생긴 줄도 모르고. 어떻게 하면 빠짐없이 빛을 비춰 그림자가 지는 부분을 없앨 수 있을까.” 같은 뇌외과 의사인 ‘산페이’가 한 이 질문에 미야비는 “자기 안에 빛이 있으면 된다. 그러면 어둠도 밝게 보일 테니까요”라고 답한다. 과거 환자의 생명과 관련한 선택을 두고 정답을 찾지 못했다고 괴로워하며, 그림자는 어딘가에는 분명히 질 수밖에 없고 이런 현상을 ‘언멧’이라 부른다고 설명하는 산페이에게, 미야비는 그때 할 수 있던, 모든 최선을 다해 내린 결론이 이미 그의 빛이었다고 말해 준다. 우리는 지나간 선택을 지금의 시선으로 판단하며 끝없이 후회하곤 한다. 하지만 당시에 내가 가진 정보와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면, 그 최선이라는 ‘빛’이 우리 안에 있다면 그림자는 결코 생길 수 없다. 그 선택은 적어도 자신을 부정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이 드라마는 우리에게 불완전한 채로도 살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우리는 혼자 완벽해질 필요도 없고, 혼자 완벽해질 수도 없다. 불완전해 보이는 나의 오늘도, 내 안의 빛과 내 곁의 사람들을 믿으며 나는 다시 살아간다.









김예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