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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하다> 어둠을 뚫고 한라산에서 맞이한 새해, 한계를 넘는 순간
제 993 호    발행일 : 2026.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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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의 끝자락에서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다. ‘다가오는 2026년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 질문은 자연스럽게 1년 전의 기억으로 이어졌다. 2025년 1월 1일, 새벽 어둠을 가르며 올랐던 한라산의 풍경과 그날의 감정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그때 나는 마치 한 해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나 자신의 한계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라산은 왕복에 평균 8~10시간이 소요되는 산이다. 평소 체력에 자신이 없는 나에게는 절대 가볍지 않은 도전이다. 게다가 새해 첫날 새벽 산행을 위해서는 한 달 전부터 치열한 예약 경쟁을 통과해야 한다. 탐방객 수를 제한하는 제도가 시행되면서 성판악과 관음사, 두 코스 모두 정해진 인원만 입산이 가능하다. 나는 비교적 완만하지만, 긴 성판악 코스를 선택했다.
  제주에 도착해 간단한 일정을 마친 뒤, 산행 전날은 일찍 숙소에 들어가 몸을 눕혔다. 설렘 탓인지 깊은 잠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밤 10시에 일어나 차분히 준비를 마쳤다. 여러 겹의 옷과 최소한의 장비, 그리고 체온 유지를 위한 핫팩까지 챙기며 마음을 다잡았다. 새벽 2시 입산을 앞두고 주차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새해를 맞이하려는 이들의 긴장과 기대가 공기를 채우고 있었다.
  입구를 지나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설명하기 어려운 자신감이 밀려왔다. 헤드랜턴 불빛 하나에 의지해 한 걸음씩 나아갔다. 그러나 출발한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아 숨이 가빠왔다. 작년보다 늘어난 체중과 익숙하지 않은 무게가 몸을 짓눌렀다. 결국 두꺼운 외투를 벗어내고 걸음을 조절해야 했다.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을 확인할 때마다 아직도 ‘쉬운 구간’이라는 사실은 오히려 더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남은 거리를 생각하니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스쳤다.
  그때 함께한 친구가 조용히 가방을 들어주겠다고 말했다. 망설였지만 결국 도움을 받아들였다. 혼자만의 싸움이라 여겼던 도전이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정이 되는 순간이었다.
  새벽 4시, 속밭 대피소에 도착해 잠시 숨을 고르며 아이젠을 착용한 후 다시 출발했다. 또 다른 고비가 시작됐다. 점점 가팔라지는 길,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어둠 속에서 위를 올려다보니 한라산을 오르는 수많은 불빛이 한 줄로 이어져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리듯, 사람들은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나이도, 사연도 각기 다른 이들이었지만 목표는 하나였다. 정상에 오르는 것. 그 단순한 공통점이 나에게 다시 힘을 불어넣었다.
  속밭 대피소부터 진달래 대피소까지 이어지는 구간은 특히 힘겨웠다. 1시간 40분가량 소요되는데 이 구간에서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목에서는 피맛이 올라오는 듯했다. 몇 번이나 멈추고 싶었지만 ‘이것마저 해내지 못한다면 올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 순간, 그 모든 고통은 잠시 잊혔다. 별이 쏟아진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닐 만큼, 밤하늘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빛나고 있었다.
  새벽 6시 무렵 진달래 대피소에 도착했지만, 쉬지 않고 곧바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정상에서 해돋이를 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가 나를 이끌었다. 여명이 밝아오면서 바람은 더욱 거세졌고, 몸은 점점 굳어갔다. 정상까지 불과 10분을 남겨둔 순간, 다리는 더 이상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떠오르기 시작한 해를 보며 마지막 힘을 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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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오전 7시 50분, 나는 정상에 섰다. 구름 한 점 없이 펼쳐진 백록담의 풍경은 말 그대로 압도적이었다. 흔히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그 장면을 눈앞에서 마주한 순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밀려왔다. 단순한 등정의 기쁨이 아니라, 스스로 한계를 넘어섰다는 확신이었다.
  하산길은 올라갈 때와는 또 다른 의미를 지녔다. 누군가에게 의지했던 나는 어느새 누구보다 빠르게 나의 힘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중간에 먹은 따뜻한 라면 한 그릇은 그 어떤 음식보다 깊은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막 산을 오르기 시작하는 이들과 마주치며 나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는 유난히 따뜻하게 마음에 남았다.
  그날의 한라산은 단순한 산행이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한 걸음씩 나아가던 시간은 결국 나 자신을 시험하는 과정이었고, 동시에 누군가에게 기대어도 괜찮다는 깨달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끝내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다시 확인한 순간이었다.
  새해 첫날의 그 새벽처럼, 앞으로의 시간도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때로는 흔들리고 멈춰 설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다. 결국 다시 한 걸음을 내디딘다면, 우리는 또 다른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날의 다짐은 그렇게, 2026년을 향한 가장 선명한 출발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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