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이 왔다. 겨울 동안 적막했던 캠퍼스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퍼지고 말소리들이 두런두런 들려온다. 새내기 학생들은 당분간 여기저기 쏘다니면서 새 환경에 적응하느라 바쁠 것이고,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복학생들도 돌아온 교정에서 새로운 각오를 다지리라. 그동안 적막했던 연구실에도 문 두드리는 소리가 자주 들리기 시작했다. ‘春來不似春’이라고 두보는 읊었던가, 용산의 불길이 꺼진 지도 얼마 되지 않건만 미디어 법이다 뭐다 해서 이런저런 차가운 소식들은 지면과 방송파를 넘나들고 있고, 따가운 햇볕을 비웃듯 아직도 등을 움츠리게 하는 바람이 좁은 등을 때린다. 그래도 나는 본다. 양지바른 강의실 창가 편에 눈부신 햇살에서, 초롱초롱하게 뜬 눈망울로 수업에 집중하는 학생들에게서, 봄을.
그러나 아직도 이리저리 얼어붙은 것은 경기만은 아닌가 보다. 사람들의 마음도 아직 녹지 않았는지 봄이 되어도 기지개 펴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 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가진 사람이 베풀고, 있는 사람이 덜어주며 같이 걸어나갈 때 더 커지는 것은 마음만이 아니다. 소수 엘리트가 사회의 재화 중 대다수를 독점해 온 것이야 인류의 정착 생활이 시작된 이래 부지기수로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엘리트 집단의 테두리를 단단히 굳혀 더는 진입을 할 수 없도록 막으면서 사회가 정체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필자가 비교적 잘 아는 스파르타의 예를 들어 보자. 고대 스파르타는 그리스 사회에서 고전기 동안 최강국 중 하나였다. 그리고 역시 우열을 다투던 아테네와의 27년간에 걸친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그리스 사회의 최강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스파르타의 몰락은 시작되었다. 전쟁 이전의 스파르타 시민사회는 어느 정도 경제적 격차가 있었지만 그 편차가 크지 않았고, 시민단 내에는 동등한 권리와 평등한 교육을 보장해 주던 시스템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전쟁의 승리 덕분에 스파르타로 들어온 수많은 자금이 소수의 손에 몰리게 되었고, 투자할 곳을 찾던 자본이 부동산에 쏟아 부어지며 스파르타 시민사회는 부자와 극빈자들로 급속히 분열하였다. 급격한 인플레와 부동산 투기 때문에 토지를 잃은 시민의 자식들은 경제적 능력의 상실로 교육을 받지 못하게 되고, 이는 정규 시민의 수를 줄이여 이러한 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소수의 부유층은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만을 챙기며 시민단의 문호를 열려고 노력하지 않고 자신들의 달콤한 생활을 즐길 뿐이었다. 결국, 스파르타의 국력은 급격히 떨어져 갔고 한 세대가 지나지 않아 삼류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다.      
부동산으로 상징되는 재산의 집중, 빈부격차로 말미암은 사회의 양극화, 소수만이 받을 수 있는 교육과 그 때문에 생긴 신분적 차이. 고대 스파르타와 현재가 겹쳐 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시일지 모르겠다. 가끔씩 등이 시려도 햇볕은 따뜻하다고 믿으니까. 강의실 문을 열며 오늘도 나는 봄빛을 본다.  
 
윤진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