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이수 규정 변경에 이은 ‘늑장 행정’
사회자(아래 사회) : 먼저 외국어 전용 강의 실시를 발표한 시기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박현욱(아래 현) : 개강하면서 갑작스럽게 발표된 외국어 전용 강좌가 국제화 경쟁력을 키우자는 여론에 편승하려는 학교 측의 탁상공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외국어 전용 강좌를 개설한다고 하면 대외적으로 세계화 시대에 경쟁력 있는 대학이라는 인식이 들지 않습니까? 대학의 위상만을 생각해 이 같은 외국어 강좌를 시행하는 것 같습니다.
박새롬(아래 새) : 외국어 전용 강좌를 실시하겠다는 공지에 앞서 외국어 전용 강좌를 충분히 학생들에게 홍보하고 시행이 됐어야 한다고 봅니다. 어떠한 제도를 시행할 때 유예기간을 둬 미리 경험해 보고 이 결과를 판단하고 나서 제도적으로 도입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학교에서 발표한 것도 일부 강좌의 시범 운영이라는 일종의 유예 기간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너무 갑작스럽게 공지가 이뤄진 것이 문제 같습니다.
오하림(아래 오) : 저도 전혀 논의도 되지 않았던 사안을 갑작스럽게 시행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학교에서 발표한 외국어 전용 강좌 시행 계획을 보면 15주 가운데 최소 3시간 동안 영어로 수업을 운영하는 것인데 이는 굉장히 적은 시간 아닌가요? 15주 가운데 3시간은 시범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만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개강 당일에 발표하는 등 갑작스러운 발표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번 학기는 완전히 그 수업을 외국어로 진행하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서 이 정도 시간이라면 시범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고 봅니다.
손보람(아래 손) : 아는 분이 자연대에 다니고 있는데 전공 강의 첫 시간에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겠다고 교수님이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전에 그런 내용에 대해 한 마디도 없었는데 갑자기 영어로 수업한다고 해 매우 당황하였다고 합니다. 현재도 영어로 수업을 진행 중인데 수업을 뺄 수도 없고 전공 공부를 따라가기 버거워하는 등 외국어 전용 강좌 때문에 고생이 많다고 합니다. 심지어 ‘수강신청을 하기 전에 얘기해 줬다면 이 수업을 넣지 않았을 텐데’라며 속상해하더라고요.
외국어 전용 강좌, 학문 기강 흔들릴 위험까지
현 : 영어로 전공 강의를 운영하는 대학이 서울대, 고려대, 카이스트 등 우리나라에서 이름이 있는 소위 명문대라고 할 수 있잖아요. 이런 학교들에서 외국어 전용 강좌를 시행하는 것을 보면 우리 또한 이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학생들의 외국어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는 것인 만큼 시행착오는 당연히 따를 것이고 학생들이 불편을 겪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강좌를 들으며 점차 문제들을 개선해 나간다면 영어가 필수인 사회에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오 : 저 같은 경우에도 외국어 전용 강좌에 대해 전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영어로 전공을 진행하는 수업이 필요한 단과대학도 있을 것입니다. 문제가 되는 곳은 인문대학 중 철학과, 사학과 같이 추상적인 내용을 공부하는 학과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말로 된 책을 보더라도 그 내용의 의미를 이해하기가 어렵거든요.
새 : 국어국문학과 같은 경우 영어로 교수님이 설명한다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생각해요. 경영학이나 공학 계열은 영미 국가권이 타 국가보다 많이 발전했고 그 학문의 시초가 되는 곳이니 원서로 공부하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합니다. 그러나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는 경우 전공 지식을 습득하는데 외국어 전용 강좌가 걸림돌이 될 것 같아요. 열심히 공부해서 전공 내용을 100% 이해하는 것도 힘든데 영어로 수업하면 그 반도 따라가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손 : 저도 반대 입장입니다. 전공을 영어 강의로 시행하는 고려대의 경우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어 강의 만족도를 조사했는데 문과대, 정보통신대, 간호대, 의대 학생들의 영어 강의에 대한 만족도가 5점 만점에 1점대에서 2점 초반대로 가장 낮았습니다. 이는 학문의 특성상 영어로 강의하면 효율이 떨어지는 전공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상황이 이러한데 우리 학교는 전자정보대학과 같이 전공을 영어로 배울 때 효율이 떨어지는 학과에도 외국어 전용 강좌를 배정했습니다.
새 :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단순히 영어만 잘한다고 해서 글로벌 인재라고 할 수는 없어요.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위치에 있는 사람, 또 그것을 외국어를 통해 국제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을 글로벌 인재로 인정하는 것이죠. 그러나 영어로 전공 수업을 진행하게 되면 전공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고 수업에 대한 만족도도 떨어지게 돼 진정한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오 : 영어로 전공과목을 수업하는 일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학문의 기강을 흔드는 일이 될까 우려스럽습니다.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게 되면 영어에 유능하신 교수를 임용하게 될 텐데 자연스레 영미 국가에서 석·박사 학위를 딴 교수가 많이 임용될 것입니다. 학교 내 교수 중 대부분을 영미 국가 출신이 장악하게 될 것이고, 나아가 학문의 경우도 영미 국가 학문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영미 국가에 대한 학문의 종속화가 심화될 것 같습니다.
사회 : 외국어 전용 강좌에 대한 입장 정리와 함께 운영 방안에 대해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손 : 이번 외국어 전용 강좌를 도입하게 된 것을 보면 당사자인 학생의 의견은 수렴하지 않은데다가 이 제도의 효용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급하게 도입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영어로 전공 강의를 도입하게 되면 아까 박새롬 학우가 말했듯이 학생들의 영어 실력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은 현재 상황에서 전공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고 나아가 전공 만족도 역시 낮아지게 될 것입니다.
새 : 외국어 전용 강좌를 급하게 도입하기보다는 단계적인 도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경영대처럼 원서로 공부하는 것이 효율적인 학과부터 수업 교재를 원서로 사용하고 그다음 단계로 외국인 교수가 진행하는 수업을 진행해 부담 없이 학생들이 즐겨 들을 수 있게 하는 과정을 도입합니다. 그 후에 전공 외국어 전용 강좌를 본격적으로 도입한다면 효과적으로 학생들의 외국어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현 : 학생의 수준과 학과의 특성에 맞게 영어 수업이 진행됐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처럼 영어로 수업 진행이 가능한 모든 수업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방식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를 외국어 전공 강의의 도입기라고 볼 수 있으니, 학생들의 의견 수렴을 통한 이후에 시행해야 앞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회 : 외국어 전용 강의 도입에 대한 여러분의 의견 잘 들었습니다. 학생들의 영어 실력을 쌓고자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고 오히려 학생들의 전공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릴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또한 도입을 하게 된다면 영어 기본 실력을 쌓은 후 단계적으로 도입하자는 제안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학생들에게 정말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수업이 되기 위해서는 선행 조치가 이뤄졌어야 했다는 것이 모든 토의자분의 의견이었습니다. 토론에 참여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이번 토의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