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의 ‘포춘’은 라틴어 ‘포르투나(fortuna)’에서 나왔다. 고대 신화에서 포르투나는 기회와 행운의 여신이다. “발에는 날개가 달려 있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앞머리는 더부룩해 누구나 쉽게 잡을 수 있지만 지나간 뒤에는 다시 붙잡을 수 없도록 뒤통수는 대머리를 하고 있다.” 달려오는 그를 잡으려면 앞쪽 머리카락을 낚아채야 한다. 이미 지나간 뒤 잡으려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포르투나는 뒷 대머리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은 포르투나와 마주친다. 지난해 ‘베토벤 바이러스’로 MBC 연기 대상을 수상한 배우 김명민은 나이 서른둘이 돼서야 만날 수 있었다. 그나마 여신은 달려와 안기지 않고 멀리 그를 스쳐가려 했다. 하지만 그는 삶의 고단함에 현기증을 느끼던 그 순간에도 스쳐 지나가려는 포르투나의 앞머리를 낚아챘다. 연기 생활 10여 년 만이었다.
김명민은 1996년 24세의 젊은 나이에 공채를 통해 배우의 길에 들어섰지만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세상은 내세울 것 별로 없던, 조각 같은 외모도 화려한 스타성도 없는 그에게 턱없이 가혹했다. 전신 부상과 드라마 촬영 중단 등 큰 시련을 겪으며 연기를 포기하고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기 위해 집과 차 등을 모두 팔았을 무렵 운명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바로 KBS 대하 사극 ‘불멸의 이순신’의 출연 섭외 전화였다. 사실 이 작품의 이순신 역은 김명민이 할 게 아니었다. 먼저 캐스팅된 배우들의 출연이 무산되면서 우여곡절 끝에 운명과도 같이 그가 주인공을 맡게 되었다. 그는 이렇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정확한 발음과 우렁찬 목소리로 그는 엄격하면서도 인간적인 이순신을 연기해 냈다. 이순신은 그를 통해 사람들에게 불멸의 존재로 인식되었고, 김명민은 ‘불멸의 이순신’을 통해 KBS 연기 대상을 수상하며 제2의 연기 인생을 시작했다.
일본 2위의 인재 파견 업체인 템프스텝의 시노하라 요시코(75·篠原欣子) 사장. 그녀는 두 차례의 이혼과 두 차례의 실직을 겪은 뒤 1973년 서른아홉의 나이에 책상 하나와 전화기 한 대로 창업을 했지만, 일본은 물론 세계에서 인정받는 기업을 일궈 냈다. 포춘(Fortune)지(誌)는 그녀를 2000년부터 무려 9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기업인 50인’에 선정했다. 지난해 월스트리트저널도 그녀를 ‘아시아의 주목할 만한 여성 10인’에 선정했다. 그녀는 자신의 저서 『찾아라, 일의, 기쁨을』이라는 책에서 인생에서 기회를 잡는 요령으로 12가지를 소개한다. 그녀는 “지금 하는 일에 정신없이 열중하라.”, “기회는 어느 날 갑자기 온다.”, “시작은 언제라도 늦지 않다.”, “진짜 성공에 필요한 것은 능력이 아니라, 한순간의 자그마한 용기다.”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다 실패하더라도 해 보는 것이 단연 좋다.”라고 조언한다.
김명민이 기회를 잡은 이야기와 요시코 사장의 30여 년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고봉만
불어불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