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 해는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문제로 온 국민이 몸살을 앓더니, 이어 중국산 멜라민분유가 또 한 번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올봄엔 석면 베이비파우더에서 시작된 탈크논쟁이 화장품, 의약품에까지 확대되었고,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이번엔 인플루엔자 A(H1N1)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그야말로 먹을 것이 없고, 한순간 맘 놓을 틈이 없다. 우리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치열하게 기술 개발에 주력해 왔건만 세상은 점점 더 살기 어려워지는 것 같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과학 기술의 발달로 현대의 소비는 건강과 안전, 생활의 질을 생각하는 ‘가치추구형’ 소비문화로 변화되었다. 뜨거운 열풍으로 다가왔던 웰빙(well-being) 트렌드는 한때의 유행으로 지나가지 않고 우리 사회의 중심적 라이프 스타일로 토착화되었다. 그러나 소비자 기본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여덟 가지 소비자 권리 중 첫 번째 권리이면서, 매슬로우의 욕구위계설상 2단계 수준밖에 되지 않는 지극히 보편적이고도 필수적인 ‘안전의 욕구’가 점점 더 충족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으니 아이러니다.
이쯤에서 우리는 두 가지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위험 커뮤니케이션의 문제고, 또 하나는 위험의 생성 자체에 대한 고민이다. 소비자 안전의 문제가 불거져 나올 때마다 우리는 비슷한 광경을 목격하곤 했다. 민심이 동요되고 책임 소재를 가리는 과정에서 공식처럼, 사실 그 위험은 별거 아니란 식의 관계 기관의 발표를 보아 왔다. 그리고는 소비자들도 공식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레테의 강 저편으로 훌쩍 건너가 버리곤 했다. 차후 유사한 문제가 다시 한번 터지면 그때서야 왜 아직도 개선이 되지 않았느냐며 또 한 번의 질책이 난무할 뿐이다. 
모두가 꿈꾸는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사회, 그것은 누구 혼자만의 노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위험의 생성 자체를 막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대안의 하나는 ‘느림’에 있다. 앞만 보며 달려가는 맹목적인 기술 개발이 자원 고갈과 환경오염을 가져온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 때문에 날로 더워지는 지구, 그리고 높아지는 해수면... 이제 우리는 금세기 안에 아름다운 섬나라 몇을 영영 잃게 될지 모른다. 좀 더 싼 비용으로 축산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욕심에 초식동물에게 육류 사료를 먹임으로써 광우병이라는 재앙을 만들어 냈다. 제조물 책임법에서는 제품의 결함으로 발생한 소비자 피해를 제조자가 손해배상을 해주도록 하고 있다. 다만 당시의 과학 기술로 예측이 불가능한 위험에 대해서는 면책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면책이 되었다고 해서 이미 생겨난 위해와 소비자 피해가 사라지거나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는 여전한데 가해자만 없어질 뿐이다. 조금만 느리게 갔으면 한다. 발전의 속도만큼 어딘가에서는 파괴와 위험이 증가하고 있으니...

유현정
주거환경·소비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