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05 김자영
 

청춘 남녀가 어둑한 공방에서 도자기 틀을 돌린다. 공방 안을 부유하는 「언체인지드 멜로디(Unchained Melody)」가 로맨틱하면서도 야릇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사랑과 영혼’을 본 사람들이라면 이 장면을 최고로 꼽지 않을까. “탱고는 실수가 없소, 혹 실수를 해서 발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라오.” 나이가 들어도 훈훈한 남자 알파치노가 한 여인과 탱고를 출 때 흐르던 「포르 우나 카베사(Por Una Cabeza)」는 영화를 보고나면 다시 듣고 싶어지는 음악이다. 이처럼 영화 속 음악은 영화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영화 음악의 발전과 대중적 확산을 위하여 제천에서는 매년 여름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개최되고 있다. 영화와 음악을 좋아하는 내가 이 행사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이 영화제에서 내가 한 일은 자원활동가로 지원하여 영화제 준비와 진행을 도우며, 관객과 모든 공연들 사이에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공연을 준비하는 것은 참으로 고된 일이다. 내가 속한 26명의 공연 자원활동팀의 주된 업무는 대략 2,3천 개의 의자를 열을 맞춰 세우는 것, 무대 설치, 대기실 정리 등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영화제가 시작되면, 상영 중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는 사람들을 제지하고, 자리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을 제자리로 돌려보낸다. 야외상영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의 돌발행동은 우리들을 더욱 고되게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환상적인 특권은 누구보다 가까이서 좋은 영화와 세계 뮤지션들의 공연을 즐길 수 있다는 것! 물론 관객들처럼 맘껏 뛰고 소리를 칠 순 없었지만, 일주일간의 큰 공연을 만드는데 작은 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2,3천 개의 의자를 30분도 채 되지 않아 마치 도미노처럼 각을 맞춰 세우는 일과 틈나는 시간마다 그늘에 누워 잠을 청하는 일도 자연스러워졌다. 관객들이 빠져나간 공연장을 정리하고 숙소로 돌아가서, 맛있는 통닭과 시원한 맥주는 거두절미 브라보! 고되고 힘든 하루하루였지만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는 이유는 ‘의미 있는 함께’였기 때문이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친구들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낯선 이들이었지만, 영화제에서 만큼은 아주 오랜 친구들처럼 손발이 척척 맞았다.
 


대학 생활을 마감하면서 적극적인 선택이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소중한 교훈을 얻어 간다. 그리고 그 선택적 경험은 지금의 나를 더 깊고 풍부하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일을 진행해가며 자신과 타인을 조율한다는 것은 비단 지금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내 삶을 일구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 생활의 마지막 뜨거운 여름은 좋은 영화와 좋은 음악과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막을 내렸지만, 그 기억은 제천의 청명한 바람과 함께 내 마음 속에 오래도록 ‘함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