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프랑스 철학자 가운데 자크 랑시에르(J. Ranciere)라는 사람이 있다. 그가 쓴 대표적인 저서 중에『무지한 스승』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무지한 스승? 그렇다. 랑시에르에 따르면, 정확히 스승의 덕목은 무지에 있다고 한다. 이러한 역설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의 주장은 이렇다. 스승의 역할은 지식을 전달하는 데 있지 않다. 왜냐하면 앎은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르쳐 주는 사람 없이 무언가를 알아내야만 했던 상황에 처해보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사실은 대부분의 경우, 앎은 그렇게 스스로의 노력으로 얻어진다. 여기에서 스승의 역할은, 각자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능을 사용해서 앎에 이를 수 있도록 돕고 강제하는 데 있을 뿐이다.
랑시에르는 여기에서 더 나아간다. 배움에는 오직 하나의 올바른 방법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동일한 것을 터득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길 혹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철학자가 연구와 사색을 통해서 깨달은 삶의 이치를, 누군가는 수 십 년 동안 도자기를 구우면서 깨우칠 수도 있다. 서로 다른 영역에서 서로 다른 것을 배우지만, 두 사람은 어떤 동일한 이치 혹은 논리에 이르게 된다. 왜냐하면 “모든 것 안에는 모든 것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한 분야에서 무엇을 온전하게 이해한 사람은 다른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어떤 분야에서든 혹은 어떤 것에든 스스로의 힘으로 무엇을 깨닫고, 그것을 통해 진보한다는 것은 소중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무지한 스승’은 어떤 면에서 이상적이다. 실제로, 학식이 많고 똑똑한 스승보다는 무지한 스승이 되는 길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학생들을 가르칠수록 깨닫게 된다. 일반적으로 그렇게 하기 때문에, 혹은 할애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서, 혹은 또 다른 이유 등으로 스승은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수하는데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 그 지식이 그들의 것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경험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학생들은 지식을 수동적으로 전수받는 한갓 대상에 지나지 않을 뿐, 능동적인 주체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무지한 스승이 되는 길은 어렵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인내를 필요로 한다. 학생들이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고 방황하고 모색하는 긴 과정을 함께 견디고 지켜봐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을 것이다. 강의 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배워야 할 내용은 많기 때문이다. 강의 시간의 한계를 보충하기 위해, 페이퍼 등의 다른 소통 방법을 찾아보지만, 그것이 의미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세심한 논평 등을 통해서 학생들과 의견을 교류해야 한다. 두 말할 나위 없이 여기에는 많은 시간의 투자가 요청된다. 
무지한 스승이 되는 것에는 물론 의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스승이나 학생들의 의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의지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물리적이고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숙제이다.

철학과 조교수 박기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