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대학을 여는 일은 新市를 여는 일과 동일하다. 정신적 신시라고 할 수 있는 대학의 개교는 그런 점에서 남다른 흥분을 자아내고 드높은 기대감과 사명감을 갖게 한다.
 금년 9월 27일로서 우리 대학은 개교 58주년을 맞이한다. 이것이 산술적인 숫자가 아니라 대학의 양적, 질적 성장을 의미한다는 점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교 58주년을 맞이한 이 시점에서 우리는 대학의 직면한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이때 우리는 먼저 대학의 건학이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현실 판독에 고도의 능력이 필요하고 방향설정에 상당한 예지력이 요구되는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 한 공동체의 최고 이념을 성찰하는 일은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것은 마치 한 나라가 난세와 전환점에서 건국이념을 살펴 그것에 토대를 두고 방향을 잡는 일과 다르지 않다.
 우리 대학의 건학이념은 진리, 정의, 개척이다. 진리는 학문의 영원한 과제로서, 정의는 올바른 삶의 지표로서, 개척은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창의정신으로서의 함의를 각각 갖는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진정 건학이념을 제대로 존중하고 그것을 충실하게 구현하였는가. 구체적으로 우리는 모두 진리라는 건학 이념 앞에 순정한 헌신을 하였는가. 그리고 공의로움을 늘 삶의 지표로 삼고 판단하였는가. 또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개척의 정신을 신중하나 과감하게 발휘하며 살아왔는가.
 최근 들어 우리 대학뿐만 아니라 수많은 대학들이 변화된 21세기 현실 앞에서 혼란과 불안을 느끼고 있다. 변화란 어쩔 수 없는 인류사적 현실이지만 그 변화의 심층구조를 파악하는 일과 한 공동체의 가치 있는 미래를 열어가는 것은 당대 인간들의 몫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우리 사회는, 대학까지도 도구적 효용성의 과잉 앞에서 참다운 삶과 영혼이 위협받는 상황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진리는 도구화된 외압과 불안이 없는 상태에서 발견되고 창조될 수 있다. 공의로움 또한 평정한 마음 상태에서 구현된다. 개척 역시 그러하다. 진리와 공의로움이 없는 개척은 위험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대학은 이제 21세기의 크나큰 변화 앞에서 근본적인 역할과 모습을 재성찰하여야 한다. 그리고 구성원 모두가 건학이념을 숙고하는 가운데 신명을 갖고 일하며 연구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특히 눈치를 보는 학문, 사업화된 학문, 소아적 욕망만을 충족시키는 학문, 무조건 싸워서 이기는 학문을 넘어설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그야말로 私와 邪와 雜이 끼이지 않은 순정하고 대아적인 뜻 아래 바른 학문과 바른 삶이 창조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