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대란이란 말이 이젠 낯설지 않다. ‘大亂(대란)’이란 엄청난 한자어도 이젠 충격적이지 않다. 대란이 이미 일상의 일부가 되어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 취업의 어려움을 절절하게 표현하고 싶으면 이제 다른 기막힌 단어의 조합을 만들어 내야할 것이다.
취업대란에서 살아남기 위해 한국사회 전체가 전력투구하고 있는 듯하다. 정부도 청년실업 해결을 위한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새로운 듯하지만 새롭지 않은, 효과적인 듯하지만 특별한 효과가 없는 대책들에 이젠 당사자인 청년들도 대단한 신뢰를 보내지는 않는 듯하다.
대학의 노력도 눈물겹다. 대학정보공시제에 따라 전국의 대학들은 의무적으로 졸업생들의 취업률을 공개하게 되었다. 취업률이 대학의 교육역량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 중 하나가 된 셈이다. 더구나 취업률은 우수 신입생 모집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니 많은 대학들이 사활을 걸고 취업률 제고에 노력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허위 통계와 통계 조작과 같이 어처구니없는 편법을 저지르는 대학들도 있다고 한다.
대학 내의 취업관련 기관들도 각종 취업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홍보하고 실행하느라 분주하다. 우리 대학의 취업업무를 책임지는 종합인력개발원도 다양한 서비스를 마련하고 있다. 직무능력검사, 적성흥미검사, 적성성격검사, 인성검사와 같은 다양한 적성평가 테스트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입사원서 작성, 모의면접, 프리젠테이션 훈련, 이미지 메이킹 강좌, 진로상담, 취업캠프, 취업동아리 지원 등 취업에 필요한 다종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여전히 학생들의 관심과 참여가 부족해 어려움이 있다는 안타까움과 고충을 토로하기도 하지만, 담당자들의 정성과 수고는 대단하다. 어디 그뿐인가. 단과대학은 단과대학대로, 학과는 학과대로 취업 촉진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과 실행을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러나 취업대란과 취업준비 열풍의 와중에서 강단에 서는 마음은 때로 아주 불편하다. 전공과 진로가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학생들의 물음을 당돌하지만 순진한 질문이라고 웃어넘기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문득 나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많아 졌다. 대학과 학과를 선택해 입학하는 학생들에게 교수로서 전공과목을 잘 강의하면 충분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반면 대학에서 습득한 전공 지식이 사회진출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한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전공은 전공이고 취직은 취직이라거나, 교육은 교수의 일이고 취직은 학생의 일이라거나, 취업역량 강화를 위해 수업 내용과 방법을 파격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거나, 심지어 교수도 취업 알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거나 등등의 주장들은 관점과 입장에 따라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각각의 전공 지식을 열심히 연마하는 학생들이 취업과 사회활동에서도 성공적이라는 신념을 갖고 살아왔다. 그러나 앞으로도 이 생각을 굳건히 지켜낼 수 있을까? 요즘, 취업대란 속의 강단도 취업고민으로 편치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