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역시 번화가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들로 붐빈다. 때론 지나가던 행인에게 시비를 거는 사람도 있고, 애꿎은 간판을 집어차 넘어뜨리는 사람도 있다. 길거리는 토사물로 더럽혀져 있지만 행인들은 항상 겪어 왔던 일이라 생각했는지 흘깃 쳐다보곤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한국사회는 술에 취해 추태를 부리거나 다음날 자기가 무슨 짓을 했었는지 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마저 "괜찮다"며 관용을 베푸는 미덕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술(酒) 문화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자기 자신을 놔버릴 만큼 술을 먹은 이들에게까지 "술에 취하면 언제든 그럴 수도 있지"라는 사고방식이 과연 옳은 것일까.
 이는 나영이 사건과 부산 여중생 살해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나영이 사건 당시 피의자 조두순은 만취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감형을 받아 12년형을 선고받았다. 우리 형법은 만취한 상태에 있는 자를 '심신미약자'로 취급하고 스스로를 가눌 수 없는 상태에 있다고 간주하기 때문에 법원이 이런 판결을 내린 것이다. 제 아무리 국민들이 ‘어떻게 저런 흉악범에게 재판부는 12년형을 선고하는 것인가!’라고 따져봐야 소득 없는 외침일 뿐이다. 그들도 재판관이기 이전에 인간일진데 어찌 이같은 범행을 보고도 높은 형벌을 부과하고 싶지 않았으랴. 판결문을 읽는 내내 이를 갈았을 지도 모를 노릇이다.
 '만취상태'가 심신미약의 요건이 되는 나라는 흔하지 않다. 예컨대 영국은 아동 성범죄자가 알코올 및 마약 등을 사용했을 경우 오히려 형량을 높이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정 반대의 법논리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단순한 문화적 관습으로 치부하기엔 본 법률 규정을 악용할 가능성이 너무 높아 보이지 않는가?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판단할 기준도 명확하지 않을 뿐더러, 진술시 "술먹고 실수했다, 기억나지 않는다"라는 한마디에 운이 좋으면 형량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는 이미 범죄자들이 법정에서 매번 내뱉는 말이지 않는가. 못 먹어도 그만인 게다.
 음주운전치사치상죄는 음주 후 운전을 하다 사람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에 가중 처벌을 한다는 규정이다. 뭔가 미심쩍다. 어째서 같은 음주 후 저지른 범죄에 대해 '하나는 형을 감경, 하나는 형을 가중한다는 것일까?'라고 말이다. 물론 논리적으로 타당한 학설이 존재하겠지만 국민이 이를 수긍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부산의 한 여중생을 강간, 살해한 혐의로 얼마 전 검찰에 송치된 김길태는 자신이 범행 당시 만취상태에 있었다고 주장하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만취 상태에서 아동을 성폭행하고도 감형의 혜택을 받았던 조두순에 대한 분노와 우리 형법에 대한 의문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예비 수혜자가 등장한 것이다. 또다시 인면수심의 범행에 대해 감형처분이 내려진다면 그 비난의 화살이 김길태만을 향하진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언제까지 '술'에 이토록 관대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