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레 한국 고전 소설들을 찾아 읽어보던 때였다. 작품은 이청준의 ‘매잡이’였다. 좋아하던 작가도 아니었고 관심이 생겨 찾아본 작품도 아니었다. 분명한 것은 함께 읽었던 여러 편의 고전들 가운데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있는 유일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작품에 흥미가 생기게 되니 자연스럽게 매와 매잡이에게 전에 없던 신경이 쓰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네스코가 지정한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매사냥이 등재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그 중에 우리나라도 포함되었음을 알게 됐다. 대전 시내에서 한참을 들어가 도착한 고려응방(高麗鷹坊). 그곳에 도착하자 여태껏 보지 못했던 풍경이 펼쳐졌다. 사진은 물론 영상과도 비교할 수 없는 생동감이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몇 시간 동안 너무나 익숙해보였던 매와 응사(鷹師). 응사는 매사냥이라는 전통 문화를 계승하기 위해 직장도 그만둬야 했고 가족들과도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으며 좀처럼 신경을 써주지 않는 국가와 계속해서 싸워야 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서 나온 말 한마디 한마디는 완고하고 강인했다. 뚜렷한 목표 의식과 자신감 또한 지니고 있었다. 어쩌면 그의 손에 남은 것은 매 한 마리일 뿐 다른 모든 것들과의 싸움을 해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좋아한다는 그 이유, 계속해야 한다는 의지는 그를 여전히 응사로 남아있게 했다. 인터뷰 중 ‘응사는 마치 무당처럼 타고나야 하는 것 같다’는 말을 했던 그. 말 한 마디 통하지 않는 매와 가장 깊은 대화를 하고 있는 그를 보니 그 말은 자연스레 납득이 되었다. 그는 합법적으로 매를 훈련시키기 위해 무형문화재 신청까지 했지만 그 이상의 지원은 받을 수 없었다. 매사냥 문화를 이어가기 원하는 사람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허가 없이는 천연기념물인 매를 사육할 수 없는 까닭이다. 전통 문화를 어떻게든 지키려는 사람들과 모순섞인 관심만을 주는 환경. 어느 한 쪽이 져야만 끝나는 싸움인 걸까? 야생에서 받아 온 매를 길들이려면 24시간씩 적어도 몇 달을 팔 위에 올려놓고 적응시켜야 한다고 한다. 대체 무엇이 아픈 팔조차 잊게 하고 하루를 온전히 매에게 쏟게 할까. 팔 위에 무언가를 올려놓기는 커녕 아주 조금의 힘든 일도 피하려고 했던 내 팔이 눈에 들어왔다. 진정 원하는 것이라면 몇 시간이고 버틸 생각조차 못하는 두려움. 혹시나 아플까 시작조차 하지 않고 겁내는 모습. 이런 내가 한쪽 팔에 ‘버렁’이라는 장갑을 끼고 매 체험을 해보고 있었다. 버렁이 이상하리만큼 커보였다. 돌아오는 길, 마을을 빠져나가는 트럭을 얻어 탔다. 조금은 울퉁불퉁한 길 위로 세상이 탈탈탈 흔들렸다. 빠르게 스쳐가는 풍경 속에서 응방은 점점 멀어져 가는데 “매 나간다”하던 응사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날카롭게 빛나던 매의 눈도 점점 또렷해져 갔다. 매는 잡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라는데. 나는 뭘 받아온 것인지 흔들리는 트럭 위에서 엉거주춤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