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석렬 사회학과 교수
후쿠시마 제1 원전의 방사능 대량유출 사고를 보면서 바쁜 일을 제쳐놓고 사태의 추이와 파장, 사고의 원인 등에 대한 언론보도를 읽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세계 최고의 재난방지 시스템과 기술을 갖춘 일본에서 피해의 규모가 이미 체르노빌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커져 버린 이 사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수많은 비판적 언론인이나 학자들, 시민운동가 등의 비판적 해석을 읽으면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두 가지 수준에서 인류의 큰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기술적 안전성에 대한 맹신과 핵에너지 사용 자체에 대한 비판이다. 이 글에서는 기술에 대한 비판만 이야기하려 한다.
원전의 모든 안전장치가 무력화되어 방사능 대량유출이라는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10만 년에 한 번일 정도로 설계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스리마일, 체르노빌에 이어 후쿠시마까지 30년 동안 3건의 방사능 유출 사고가 국제원자력기구에서 정한 사고등급 4 이상의 심각한 사고였다. 따라서 사고확률의 계산이 매우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런 오류의 원인 중 하나는 인간이 인지하지 못하는 요인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요인들은 우연성과 결합하면서 결정적인 사고의 원인이 된다. 후쿠시마 원전 설계자들은 냉각펌프를 가동하는 전력 펌프 장치가 침수하여 전기공급이 끊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진설계만으로도 충분히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쓰나미만 없었다면 후쿠시마의 재앙은 피할 수 있었을까? 또 다른 사고의 원인은 없을까? ‘위험’에 대해 사회과학적 분석을 발전시키고 있는 찰스 페로우라는 학자를 따르면, 많은 사고는 일상적인 운영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작은 사고로부터 발생할 수도 있다. 보통 기술자들은 그와 같은 작은 사고들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 그렇다면 통제 가능하지만 여러 사고들이 겹쳐서 일어나게 될 때는 어떻게 될까? 모든 복잡한 기계 시스템의 운영에는 ‘용인 가능한’ 고장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이 ‘용인 가능성’은 수학적으로 계산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경험적으로만 주어진다. 보통 우리는 기계 시스템이 완벽한 조건 하에서만 가동되는 것이 아니라, 표준에서 조금 벗어나도 별 문제 없이 가동되는 경우를 자주 보고 있다. 어떤 기계의 내구연한이 끝나도 몇 가지 부품만 교체하면 멀쩡하게 기계가 잘 돌아간다는 사실을 기술자들은 잘 알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의 경우로 설계수명이 다 된 원전을 법을 바꾸면서까지 10년 정도 연장 가동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면서 크고, 작은 방사능 유출 사고가 일어났고, 그때마다 도쿄전력 관계자들은 별 사고가 아닌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몇 가지 우연성이 결합하면, 방사능 대량 유출 사고는 쓰나미에 관계없이 일어날 수 있다. 페로우는 이를 정상 사고(normal accident)라고 부른다.
예측할 수 없는 사고 요인의 존재가능성과 정상 사고의 가능성, 이 두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는 안전성의 강조는 그 자체가 매우 무모한 주장일 것이다.
물론 예측되는 사고의 종류에 따라 안전 시스템의 구축과 기술의 선택이 달라져야 할 것이다. 예측되는 사고가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적은 노력으로 충분히 수습할 수 있는 경우, 우리는 그 기술을 비교적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의 예에서 보듯 예측되는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그 피해가 자연적, 사회적 재난을 가져올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할 때에는 그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올바른 판단일까?
현재의 원자력 발전은 재난의 가능성을 항상 내포하고 있으며, 인간적 요인(운영과정에서의 실수) 등에 의한 정상 사고도 지속적으로 누적되어 왔다.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 당장 싼 에너지를 얻기 위해 원자력 발전에 의존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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