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요 뉴스들을 살펴보면 단연 일본의 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원전과 방사능에 대한 이야기, 국내 유수의 대학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카이스트(KAIST) 학생들의 연이은 자살에 관한 이런저런 논의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쩌면 별 관계없어 보이는 이 두 사건을 ‘글로벌’(global)이라는 키워드로 꿰어 맞춰보면 그 연결 고리가 눈에 들어온다. 일본의 원전 사고로 발생한 방사능 물질의 일부는 인접해 있는 우리나라로 직접 불어오는 바람에 묻어 실려 왔지만, 일부는 멀리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유입되었다고 한다. 직접 오건, 돌아오건 해외의 다른 나라에서 생긴 사고가 우리의 밥상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니 이제는 확실히 글로벌 시대인 모양이다. 그리고 카이스트 자살 사태는 주지하다시피 ‘글로벌화’로 대표되는 무한 경쟁과 전과목 영어 강의, 징벌적 등록금제 등 ‘세계 10위권 대학’이 되기 위한 ‘몸부림’(?)의 부작용일 것이다.
예전엔 그래도 봄이 되고, 봄비가 내리면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오것다.” 시 한 줄 외워 보며 느긋하게 봄비를 즐기곤 했다. 이제는 방사능 물질에 대한 공포로 봄비를 즐기지도 못한 채, “빗물이 몸에 튀면 어쩌나?”하고 걱정하게 되어 버렸다. 한편 ‘진리’와 ‘낭만’을 외치며 대학 생활을 꿈꾸었던 학생들은 이제 학점과 무한경쟁, 취직 걱정에 모든 시간을 할애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느긋했던 몇십 년 전의 예전 대학생활을 마냥 찬미할 마음은 없다. 시대는 변하는 것이고,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며 또 적응하고 발전해야 하므로. 그러면 소위 ‘글로벌 시대’에 우리 대학인은 어떻게 ‘진화’해 나가야 할 것인가? 진정 무엇이 글로벌 시대에 대한 적응과 진화의 도구인가? 다들 앞 다투어 내놓는 영어 강의인가? 영미권에서 쓰지 않는 용어인 ‘스펙’을 쌓기 위한 영어 테스트 고득점인가?
물론 영어를 잘하는 것이 왜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학문의 상당수를 영어권에서 선도하고 있고, 인터넷 세상에서 영어가 거의 공용어가 되어 버린 지금 교수건 학생이건 영어를 잘 한다는 것은 큰 장점이 된다. 문제는 영어에 모든 것을 투입하여 오히려 다른 핵심을 저버린다는 점이다. 영어는 중요한 부분들 중 하나이지 ‘학문의 알파요 오메가’가 아니다. 전면적 영어 강의 확산을 맨 처음 국내에 도입하여 시행했던 모 대학에 재임 중인 교수 몇 분을 만났을 때, 국사나 제 2외국어 전공들까지 신임교수는 영어 강의를 최소한 하나 이상 해야 하는 실정에 개탄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대학은 기업처럼 이익 논리로 ‘경영’을 해야 하는 곳이 아니며, 취업만을 위한 학원도 아니다. 대학의 본질은 ‘학문을 연마하여 사회에 봉사하는 인재를 배출’하는 데 있다.
개교 60주년을 맞아 다시 출발하는 우리 학교의 비전은 “지역과 함께 세계로 비상하는 대학”이다. 학문의 연마와 함께 공동체 의식, 지역 거점 대학으로서의 책임을 다해 지역민과의 상생을 강조하는 것이다. 글로벌이라는 단어에 현혹되어 본질과 선후를 잊어서는 안된다. 먼저 나 자신을 닦고(修身), 집안을 바로 잡은 후(齊家), 나라에 이바지하고(治國), 세계를 아우르는 것(平天下)이 순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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