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몇 달이 지난 일이다. 하지만 때때로 생각이 난다. 나는 지리에 약한 편이라 목적지를 찾지 못하고 길거리에서 두리번대고 있었다. 잠시 후 ‘길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주위를 살폈다. 때마침 한 여자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저기 죄송한데요...” 그 여자는 목소리를 듣지 못한 듯 그대로 지나쳤다. 나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다시 말을 붙였다. 그 여자는 바닥만 바라보며 점점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시간이 좀 지나서야 깨달았다. 그 상황 속 여자에게 있어 나는 흡사 ‘도를 아냐’고 묻는 종교인이었던 것이다.
학교를 다니다보면 수많은 ‘도인’들을 만난다. 우리 학교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터져 나오는 불만들도 그만큼 많다. 이에 최근 총학생회에서는 ‘지나친 포교활동을 금지하자’는 현수막을 달고 이머전시 콜(Emergency Call)등을 이용해 적극 신고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 현수막 앞을 지나가는데 작년부터 서너 번 이상을 마주쳤던 한 도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기분 나쁜 한숨을 막을 수 없었다.
도인들을 마주쳤을 때 무관심하게 지나치기도, 꼬치꼬치 캐묻기도 했다. 하지만 소통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자신의 종교도 밝히지 않고 단순히 공부하는 학생이라고만 한다. 학과나 학년을 물어봐도 잘 대답해주지 않는다. 휴학생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고 우리학교 학생이 아니라는 대답도 들어봤다. 첫 마디로 나오는 ‘사람마다 특유의 기운이 있다’와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하는 ‘우주의 원리’가 무슨 관계인지 물어봐도 명확하게 설명을 못한다. 질문을 하면 그저 공부하는 학생들이 모여 있는 곳에 함께 가자는 것이 전부다. 평소 남에게 단호하게 얘기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는 도인과 휴대전화 번호를 교환한 뒤 한 달 가량을 계속되는 연락에 시달려야 했다. 자꾸만 연락이 와 따로 만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들은 어딘지 모를 특정한 장소로 친구를 데리고 가려고 했고 그들이 하는 공부를 해야 한다며 친구를 설득했다. 말을 들어주기 시작하면 두세 시간이 지나는 것은 기본, 친구는 막차가 끊겨 택시를 타고 겨우 귀가할 수 있었다.
그저 길을 몰랐던 행인이 도인 취급을 받게 된 것은 어디에서 비롯된 문제인 걸까. 중학교 시절, 등교시간에 기도를 하는 종교 모임이 학교 안에 있었다. 이 학생들은 운동장 쪽에 모여 조용히 기도를 할 뿐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학교 측은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종교 활동을 하는 것 자체가 선교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라며 그 모임을 해산시켰다. 돌아다니며 선교 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영향이 있다고 판단해 애초에 금지시킨 것이었다. 이제 우리학교 캠퍼스를 생각해보자. ‘종교의 자유’와 ‘개인의 믿음’을 무기로 타인에게 불쾌감마저 느끼게 하는 것이 그들이 원하는 바는 분명 아닐 것이다. 무작정 배척할 수도, 그렇다고 무방비 상태로 있을 수도 없는 노릇. 진정 우리학교 학생들에게 도를 알려주고 싶다면 서둘러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박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