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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이 있는 사회
제 850 호    발행일 : 2012.09.04 


권정우(국어국문학과 교수)
 
"선생님, 일 년 동안 우리를 가르쳐주셔서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종업식이 있던 날 종례를 마치자마자 아이들은 초등학교 1학년답게 신이 나서 자기들끼리 떠들고 장난치면서 교실 문을 빠져나가기가 바쁜데 그 모습을 보며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해지는 선생님께 조용히 다가가서 이런 멋진 대사를 읊은 뒤에 절까지 꾸벅 한 아이가 있었다. 부모가 시켜서 한 일이 절대 아니다.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도 나중에 우리 아이의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고백하자면 이 아이의 아빠와 엄마인 우리 부부는 이 날이 종업식인 줄도 몰랐다.
우리 아들은 누구를 닮았는지 영양가 없는 짓만 골라서 한다. 선생님을 감동시키는 일을 굳이 헤어지는 마당에 할 게 뭐람. 그런데 그 해에 하늘은 우리 아들 편이었나 보다. 2학년 때도 같은 선생님이 담임을 맡으셨고 우리 아들을 잘 봐서 아이가 숙제는 잘 안 해오지만 호기심이 많은 것도, 부모가 학교에 무심한 것도, 심지어는 우리 아들이 시험 점수에 연연하지 않는 것도 예쁘게 봐 주셨다. 아들은 담임선생님의 사랑을 받으며 학교를 다녔고 부모는 아이가 학교에 다니는 것을 마음 편히 지켜볼 수 있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 보면 이것이 우리사회에서 얼마나 큰 행운인지 알게 된다. 이런 행운을 누리게 된 데에는 종업식 날 보여주었던 아들의 엉뚱한 행동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나는 이런 행동을 덤이라고 부른다. 오늘 아침에 은행에 갔더니 이런 문구가 적혀있었다. '손님이 시켜서 하는 것은 심부름이고 시키기 전에 알아서 하는 것이 서비스다.' 시켜서 하는 것과 기꺼이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우리 동네 야채가게에 가면 부탁하지 않아도 우수리를 빼주고 한번 드셔보라며 과일 몇 개를 봉지에 담아준다. 돈으로 따지면 얼마 되지 않지만 사람대접을 제대로 받는다는 기분은 돈으로는 절대로 살 수 없다.
계산을 정확히 하고 공평하게 대우하는 것을 최선으로 여기다보니 우리 사회에 점점 덤이 없어져간다.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가 교육문제라고 생각한다. 교육문제도 근원을 파고 들어가 보면 덤이 없어져가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학생들을 내 자식들이라고 여기며 사랑으로 가르치면 학생들은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선생님을 부모처럼 따를 것이다. 나는 이것이 제대로 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덤이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고 살맛나는 사회다. 덤이 있는 사회가 되려면 사람들이 자기가 맡은 일을 하면서 덤을 주는 게 몸에 배어야 한다. 개학이 가까워오니 이번 학기 수업을 어떻게 해서 학생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하는 궁리를 하느라 머리가 복잡하다. 그런데 덤을 주어도 고마운 줄 모르는 학생들을 만나면 맥이 빠진다. 덤을 덤으로 갚지 않으면 덤을 주고 싶지 않다. 우리 아들은 삼학년이 되어 새로운 담임선생님을 맞이한 뒤로는 문제아가 되어 버렸다. 리코더를 안 가져왔다고 리코더로 손바닥을 맞고 숙제를 안 해왔다고 교실에 남아서 깜지를 썼다. 나라도 이런 선생님한테는 덤을 주고 싶지 않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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