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9일은 한글 반포 566돌을 맞는 한글날이다. 문득 같은 말과 글을 쓰는 북한 사람들도 한글날을 기념하는지 궁금해졌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던 중 북한에도 한글날이 있으며 그 날짜가 10월 9일이 아닌 1월 15일인 것을 알게 됐다. 신기하게 같은 한글을 기념하는 날인데도 남북의 날짜가 서로 달랐다.
이유인즉슨 우리나라의 한글날은 훈민정음 ‘반포’를 기념하기 때문이다. 세종실록에 한글이 1446년 음력 9월 반포되었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1926년 조선어학회에서 음력 9월 29일에 ‘가갸날’ 행사를 시작했으며 1940년부터는 양력으로 바꾸어 10월 9일로 제정됐다. 이와 다르게 북한은 훈민정음 ‘창제’를 기념한다. 훈민정음은 1443년 12월 창제됐다. 그래서 그 이름도 한글날이 아닌 ‘훈민정음 창제일’이다.
이를 통해 한글이 창제 후 반포까지 2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만들고 즉각적인 반포와 사용을 종용하지 않았다. 사대부와 유림들의 반대가 심했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왕으로서 반포를 밀어붙일 수도 있었겠지만 세종은 훈민정음의 우수성, 백성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설득하며 시기를 기다렸다. 당시 사대부들도 중국 글자만으로는 우리말과 글을 제대로 읽고 쓸 수 없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시나브로 훈민정음을 표기 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한 나라를 이끄는 세종의 애민, 즉 백성에 대한 배려와 독선과 아집이 아닌 소통의 리더십을 알 수 있다. 훈민정음 반포 말고도 세종의 애민과 소통에서 나온 업적들은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 많다.
어느새 올해 우리 학교 총학생회의 임기도 개신대동제 이후 조금씩 그 끝을 향해 달리고 있다. 이 달 말이면 학교의 새로운 대표가 되기를 원하는 후보자들이 수면 위로 나타날 것이다. 최근 ‘소통’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키워드로 자리하다보니 필자가 학교에 다닌 지난 3년간 학생 대표들 모두 학내구성원과의 소통을 주요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학내의 진정한 소통을 이끌어냈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소통이란 명목아래, 사람들을 응집시키려고 했지만 몇 해간 벌어진 학내 크고 작은 문제에 대한 학생들의 정당한 쓴 소리에는 귀를 닫았고 자신들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주입시키거나, 문제 해결 결과를 통보하는 식의 일처리가 진행됐다. 당연히 제대로 된 소통이 아닌 ‘불통’이 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SNS를 활용하거나 대화의 장을 만들려는 시도도 모두 괄목할 만한 결과를 이뤄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진정한 소통이 필요한 때다. 그 어느 때보다 학생들의 학교에 대한 애착과 관심이 적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학생이 주인이라던 학교가 학생을 대변하지 못하는 학생대표와 본부, 교직원들의 의견으로만 굴러가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규모는 다르지만 어느새 두 달 여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막무가내 식 소통은 진정한 소통이 아니다. 학교 안팎으로 세종의 소통이 절실한 때다.








민지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