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 다가왔다. 11월 28일은 총학생회와 단과대 학생회 임원을 선거하는 날이다. 12월 19일은 우리나라의 대통령을 선출하는 날이다. 투표는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우리는 충북대학교의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대한민국의 구성원으로서 투표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삶을 활동적인 삶과 명상적인 삶으로 나누었다. 그에 의하면, 활동적인 삶 중에서 가장 고귀한 것이 정치적 활동이다. 공동체의 일에 참여하는 것이 활동적인 삶 중에서는 최고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투표는 인간의 활동 중에서 최고의 행위가 된다. 우리는 이러한 최고의 행위에 참여해야 하지 않을까? 또한 고대 아테네에서는 공적인 일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을 ‘하는 일이 아무 것도 없는 사람(idion)’이라고 했다. 이 말은 오늘날 바보천치(idiot)의 어원이다. 우리가 바보천치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러나, 투표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나에게 약간의 희생을 요구한다. 나에게는 투표를 하기 위해 줄을 서기보다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노는 것이 더욱 즐거운 일로 다가온다. 혹은 밀린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 나에게는 더욱 급박한 일이다. 그러기에 나는 투표를 생략한다. 이것은 선거가 공공재의 성격을 띠고 있음에 기인한다. 공공재는 많은 사람의 공동 노력에 의해 생산되는 재화이지만, 그 재화의 생산에 협력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 나 하나쯤 투표하지 않는다고 선거가 무산되거나 선거의 정당성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이 투표에 참여해서 리더를 선출하면, 그 혜택은 투표를 하지 않은 나에게도 예외없이 돌아온다.
더욱이 보통의 리더가 아니라 ‘훌륭한 리더’를 선출하는 것은 나에게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한다. 훌륭한 리더를 뽑으려면, 나는 입후보자가 어떤 이력과 능력이 있으며 그 사람이 내세우는 공약이 무엇인지를 검토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리더가 누구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이처럼 정보를 획득하고 판단을 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그러기에 영악한 사람들은 투표와 관련하여서는 합리적 무지(rational ignorance)가 현명한 자세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충분한 정보를 갖고 투표에 임한다면, 나는 충분한 정보를 가질 필요가 없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충분한 정보를 갖지 않는다면, 나 혼자 충분한 정보를 갖는 것도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정보를 갖지 않은 ‘무지한’ 투표가 나에게는 더욱 합리적이다.
그런데, 과연 정말 그럴까?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는 격언처럼, ‘합리성을 쓰는 자는 합리성으로 망한다.’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이 영악하게 합리적 무지의 상태로 투표한다면 어떻게 될까? 결국 그 공동체는 무의미한 선거를 치르거나 엉뚱한 리더를 선출하여 고생하게 될 것이다. 그 피해는 곧 나에게 되돌아 온다. 이럴 때의 나는 ‘겉똑똑이’나 ‘합리적 바보’가 된다. 그러므로 이번 선거에서는 후보자의 공약과 이력을 꼼꼼히 챙겨보고 진정 훌륭한 리더가 누구인지를 판단하여 투표에 임하자. 합리적 바보가 되지 않도록 하자.
유능한 유권자들이 능력있는 리더를 만든다. 유권자들이여! 우리 스스로를 위해 약간의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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