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랗고 빨간 단풍이 찾아와 가을이 시작되는가 싶더니 어느덧 쌀쌀한 기운에 옷깃을 여미는 시기가 되었다. 몇 장 남지 않은 달력에 서운한 마음이 들다가도 어느새 정신없이 또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문득 ‘내 나이가 몇이더라’며 계산을 해본다.
언제부터인가 누군가 내 나이를 물으면 곧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몇 초간 머릿속 계산기를 두드려야만 지금의 내 나이를 알 수 있다. 나이를 먹으니 두뇌활동이 예전같이 않아서인가 싶기고 하고, 늘어나는 숫자에 적응이 안 돼서인가도 싶다. 이유야 어쨌든 머릿속 계산기로 나온 내 나이가 실감이 가지 않는다. 20대 중반을 넘기면서 나이를 생각할 때마다 항상 같은 느낌이다. 난 아직도 20대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은데 나이라는 숫자는 늘어만 간다. 그러다 문득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흔히 나이를 말할 때 <논어> 위정편(爲政篇)에 나오는 표현을 많이 쓴다. 열다섯은 지학(志學), 스무 살은 약관(弱冠), 서른 살은 이립(而立), 마흔은 불혹(不惑), 쉰은 지천명(知天命), 예순은 이순(耳順), 일흔은 종심(從心)이라 한다. 이 말들을 풀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고 공부를 시작해, 스무 살에 관(冠)을 쓰고 성인이 되어서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드디어 서른에 인생의 방향과 의지를 세우고 자립한다. 마흔이 되면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여 세상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쉰이 되면 하늘의 뜻을 알게 되며, 예순에는 귀가 순해져 남의 말에 귀 기울이게 된다. 마침내 일흔 살이 되면 마음이 하고픈 대로 해도(從心所欲) 경우에 어긋남이 없다(不踰矩). 참 좋은 말들이다. 헌데 이대로 세상을 사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성인(聖人) 반열에 있는 공자님이 하신 말씀이니 적어도 선비쯤은 돼야 이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러다가 누군가에게 들은 말들과 내 생각을 더해서 이 말들에 대한 해석을 조금 다르게 다시 해보니 정말 우리 인생과 닮아 있다. 10대 때는 굳이 공부가 아니더라도 뭔가 하고 싶고, 되고 싶은 꿈이 있기 마련이니 ‘무엇엔가 뜻을 둔다’는 데서 의미가 통하고, 20대는 성인이 되어 사회진출(취업)을 위해 힘쓰거나 사회 초년생으로 세상을 맛보는 시기니 말할 필요도 없고, 30대가 되면 대부분 자신의 진로를 확고히 하고 전력을 다하니 이립(而立)과 통한다. 40대가 되면 30대를 거치면서 쌓인 자신만의 성공과 실패 경험을 통해 나름의 고집이 생겨 누구의 충고와 조언도 잘 들지 않으니 불혹(不惑)이다. 50대가 되면 사람의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것이 세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하늘의 뜻을 안다’ 고 밖에 할 수 없지 않을까. 60대가 되면 귀가 어두워져 남의 말을 들으려면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70대가 되면 힘이 없어 신체 활동이 제한되니 활동범위가 줄어 경우와 법도를 벗어나는 일을 하기 힘드니 ‘종심소욕불거유(從心所欲不踰矩)’다.
해석이 어쨌든 우리에게는 나이대별로 주어지고 기대되는 모습들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우린 과연 자신의 나이에 맞는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자신의 나이에 맞게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 나이에 맞는 인격을 갖추고 그에 걸맞게 행동하는 것, 우리는 이것을 ‘나이 값’이라 부른다. 우리사회에서 존경할 만한 ‘어른’을 찾기 힘든 것은 ‘나이 값’ 하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내 나이에 맞는 인격을 가지고 행동하고 있는지 한 번쯤 돌아보자. 당신이 하는 ‘나이 값’이 당신의 모습을 추하게도, 존경받게도 만든다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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