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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책책을 읽읍시다] 아버지와 아들
제 871 호    발행일 : 2013.12.03 
당선자 | 나문엽(노어노문학과·06)


 

  1862년 3월 <러시아 통보>를 통해 투르게네프의 소설 <아버지와 아들>이 발표되자마자, 이 소설은 즉시 논쟁적 작품이 된다. ‘나는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만큼 엄청난 소란과 논쟁을 불러일으킨 문학작품을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의 독서계는 모두 <아버지와 아들> 때문에 전율했고, 이 소설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사와 비평사에서 투르게네프의 소설 <아버지와 아들>만큼 다양하고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경우도 없었다. 이 소설의 어떤 점이 당시 러시아 사회를 이토록 소란스럽게 만든 걸까? 그러기 위해선 소설 속 인물의 성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바자로프는 니힐리스트다. 소설 속 니힐리즘은 실증주의적 성격에 탈권위주의적 성격이 혼합된 형태의 이념으로서 독일 등의 서유럽에서 발달한 자연과학에서 유래했으며 이성과 그에 바탕을 둔 실증적 과학지식을 따른다. 니힐리즘에서 감정이나 예술은 하찮게 여겨진다. 이 사상은 1860년대에 러시아에서 만연했기에 바자로프는 소설 속에서 ‘1860년대 인’의 전형으로 묘사된다. 이런 바자로프에겐 아르카디라는 친구가 있으며 그 또한 바자로프처럼 당시의 진보적 사상인 니힐리스트를 흠모한다.
  이들과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이 아르카디의 백부인 파벨이다. 파벨은 그의 세대에 유행하던 프랑스식 낭만주의와 귀족주의의 옹호론자다. 전통적 예술을 즐기며 자신들의 귀족적 취향을 뽐낸다. 소설 속에서 파벨과 그의 동생인 니콜라이는 ‘1840년대 인’을 대변한다. 이들과 ‘1860년대 인’들은 갈등과 반목을 거듭한다.
  이들 간의 갈등은 바자로프와 아르카디가 함께 아르카디의 고향집으로 오게 되면서 발생한다. 첫 만남부터 ‘1860년대 인’과 ‘1840년대 인’ 사이에는 심상치 않은 기류가 감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갈등이 심한 사이는 파벨과 바자로프 사이다. 이 둘은 각자의 신념에 대해 강한 확신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점이 자석의 같은 극이 서로를 밀어내듯 둘 간의 메울 수 없는 간극을 만든다. 그리고 그 간극은 점점 커져만 간다.
  반면 부자지간인 아르카디와 니콜라이는 비록 가치관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애를 쓰는 등 유연한 태도를 취한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공존한다.
  바자로프의 독선적인 태도는 그를 세상에서 점점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친구이자 제자인 아르카디와의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기기 시작한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바자로프의 이념이 삶의 수단이 아닌 삶의 목표가 되어가는 것이다. 그는 오딘초바라는 여인을 만나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는 사랑 따위의 하찮은 감정에 빠진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며 모순된 자신의 모습에 괴로워한다.
  바자로프와 파벨의 갈등은 점점 심각해져 둘은 결투에 이르게 된다. 결투의 결과로 파벨은 부상을 입었으며 바자로프는 부상을 당하진 않지만 아르카디의 집을 떠나 자신의 집으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병에 걸려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의 순간이 닥쳐와서야 그는 자신의 사랑을 인정했고 그녀가 보고 싶다고 말하지만 그 말은 때를 놓친 울림에 불과하다.
  이념으로 인한 세대갈등은 러시아만의 현상이 아니라 만국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다. 갈등을 삶의 일부분으로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가, 앞선 세대를 모두 부정하고 갈등에 맞설 것인가. 이 문제는 긴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반복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답이 없지만 <아버지와 아들>은 이 문제에 관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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