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우리는 소련입국비자를 받는데 성공하여 남은 일은 우리의 사명이며 국민들의 소망인 좋은 시합을 갖는 것뿐이었다. 우리가 김포 국제공항을 떠나던 7일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이 신문이상에 보도되어 더욱 짐이 무거워진 기분이 들었다. 그날 동경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8일 아침 Running과 보조운동 Free Motion으로 간단히 조기운동을 마치고 8일 오후 1시에 동경을 출발하였다. 9시간 30여 분의 긴 시간 동안 JAL 비행기로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모스크바에 도착하였다. 공항에는 푸른 제복의 군인들이 모든 일을 하고 있는 것이 기이했고, 세관검사도 없이 통과하여 버스로 모스크바 시내로 들어갔다.
거리는 단풍이 든 낙엽이 지는 풍경이며 시원한 날씨가 한국의 가을을 연상시켰다. 우거진 숲을 지나는 사이사이 위인들의 동상을 볼 수 있었다. 모스크바 시내에는 큰 건물이 섬세한 구조를 하고 널찍한 시가에 자리 잡고 있어 깨끗한 거리가 퍽 인상적이었다.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거리에 나서니 이상한 듯이 바라보는 사람이 많았다. 인상적인 건물 중의 하나였던 레닌과 스탈린을 안치시킨 궁전엔 군인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가로등, 차량, 시민들이 조화된 모스크바의 야경은 멋있었으나 우리는 북괴 사람들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미행을 당해야 했다. 그후 민스크행 기차를 타고 민스크에 도착하여 한 호텔에 묵게 되었다.
민스크의 날씨는 약간 쌀쌀했고 공기는 건조했다. 시가에는 버스와 무궤도기차, 궤도기차가 많이 있었으며 자가용은 극히 적었다. 10일에는 Running과 베드에서 기술연습 중량조절 등의 시합을 위한 준비를 하였고 오후에는 민스크대학에 가서 메트 Training을 하였고 한계체중이 오버된 선수는 Running과 사우나로 조절하여 모두 패스되었으며 그레코로만형은 11일부터 14일까지 시합을 가졌는데 시합 4시간 전에 꼭 중량을 달고 있었다. 그때는 중량을 빼서 그런지 잠이 오지 않았다. 15일 아침 8시 식사를 하고 약간의 수면을 취한 뒤에 12시부터 시합에 들어갔다. 첫 게임의 상대는 일본선수였는데 1, 2회전에는 잘 싸웠으나 3회에 와서 패하고 말았다.
백승현과 강용식은 승리하였는데 이날 시합은 이것뿐으로 그레코로만형에 3명과 자유형에 4명이 출전했었다. 자유형은 15일부터 18일까지였고 6벌점제라는 룰이 적용되었는데 이것은 6점을 가지고 폴패에 4점 판정은 3점을 감점당하고, 판정 시에는 3점으로 다시 싸울 수 있는 것으로 벌점이 6점이 넘으면 탈락되고 마는 것이었다. 12일에는 한계체중에 패스하고 시합에 임했으나 아깝게도 3명이 모두 패했다.
백승현 선수만이 1패 전승으로 동메달을 획득할 수 있었다. 여기서 느낀 것이지만 나와 헝가리 선수의 시합에서 주심의 편협한 판정이 불쾌했다. 백 선수의 메달획득에 힘입어 자유형 선수 4명도 첫 시합에서 모두 승리했다. 이틀째 시합에서는 김화경, 양정모 선수가 승리하여 결승에 출전하였으나 결국 결승에서 패하므로 동메달에 그쳤다. 소련 땅에서 태극기가 3번이나 올라갔으나 애국가가 울려 퍼지지 못한 것이 임원이나 선수들을 애석하게 했다. 18일 시합이 끝나고 국립묘지와 승전탑을 구경하였는데 국립묘지는 2차 세계대전 때에 독일군에게 피살당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한 곳으로 전쟁의 참극이 눈앞에 있는 듯 했다. 승전탑은 그것을 쌓기 위해 조그만 산을 만들었는데 그 흙을 민스크시민의 손으로 날라다 쌓았다고 했다. 이곳 소련의 풍습 중에서 결혼식은 웨딩드레스를 입고하는 것이 한국과 비슷하였으며 결혼식이 끝나면 전승 기념탑에 와서 참전 용사를 추모하는 것이 상례인 것이다.
그래서 탑 앞에는 불이 피워져 있었고 신혼부부가 끊일 날이 없었다. 20일 레닌 박물관에 안내되어 갔는데 이곳에는 2차 세계대전 때 쓰던 무기와 전쟁 시 입던 용사들의 군복과 신분증 등 소지품들을 진열해 놔서 전쟁 당시를 상기하게 했다. 한국에도 이런 박물관을 세운다면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큰 교훈을 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는 길에 백화점에 들렀는데 화려하게 진열해 놓은 상품 중에 밍크 오바가 특별히 좋은 것 같았고 그 외에는 별로 좋은 것을 찾아 볼 수 없었다. 21일 저녁에는 파티가 있었는데 시합에 출전한 선수와 임원 모두 참석하여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민스크의 젊은 여성들 사이에는 이제야 미니스커트가 유행인 듯 했고 청소년들이 기타를 가지고 그룹을 형성하여 젊음을 즐기는 듯 했다. 시외로 나가보니 나라가 크기 때문인지 농업은 기계화되었고 재산은 모두 국유이며 개인재산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호텔의 조그마한 가게까지도 국유였는데 나무가 많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에도 이렇게 많은 나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스크는 백러시아(벨로루시)의 수도이고 관광도시이며 공업도시로 고적이 많았다.
모스크바행 기차를 타기 위해 역으로 가는데 시민들은 사과를 무척 좋아하는 듯 모든 사람들은 손에 사과를 가지고 있었다. 통역관이었던 알랙과 소련 레슬링협회 회장과 서기가 역전까지 나와 환송해 주었다. 떠나려고 하니 짧은 기간이나마 민스크에서의 생활이 아쉬웠다.
22일 모스크바에 도착하여 호텔에 짐을 풀고 역도 임원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시내구경과 상점에서 쇼핑을 했는데 마음에 드는 상품이 없었다. 22일 8시 30분 JAL을 타기위해 공항으로 갔는데 출입국 시에는 갖고 있는 돈의 액수를 당국에 신고해야 하고 출국수속에 비자증를 내줘야 한다. 그런데 그냥 패스포드만 내미니까 군복차림의 직원이 화를 내며 찾아내라고 했다. 이제까지 친절하게만 느껴졌던 소련생활에서의 감정이 사라지고 그들의 인간성을 재인식하게 했다. 대합실에서 한국인을 만났는데 특수기관에 근무하는 사람인 듯 했는데 무척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공항을 떠날 때 밖을 내다보니 누군가 환영하는 듯 군악대가 연주를 하고 있었다.
23일 6시(한국 시각 12시) 일본에 내리니 한국에 온 기분으로 긴장이 풀리는 듯 했다. 저녁은 아리랑 집에서 한식으로 하고 24일에는 모든 선수가 동경지리를 알고 있어 각자 동경 시내를 구경했다. 저녁에는 재일교포의 초대에 참석하여 즐겼는데 오랜만에 즐겁고 편안한 시간이었다. 25일 9시 한국으로 떠나 11시에 김포에 도착하였다. 이것으로 즐겁고도 긴 민스크 여행 얘기는 매듭을 지을까 한다.
끝으로 메달권에 들지 못해서 격려해주신 학장님과 교수님 그리고 학생 여러분에게 죄송함을 느끼며 앞으로 다가올 올림픽에서 기어코 메달을 목에 걸고 돌아올 것을 약속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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