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중순이 되면 매년 학교는 학생회 선거로 시끌벅적하다. 출마한 후보자 모두 학생들과 학교를 위해 온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뛰겠다며 한 표를 호소한다. 그런데 올해는 작년에 비해 조용하다. 총학생회장 후보를 비롯해 각 단과대학 학생회장 후보들도 단일 후보인 것이 그 원인인 듯하다. 유권자 입장에서 보면 찬반 이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참 힘 빠지는 선거이고, 후보자 입장에서 보면 큰 결점이 없는 한 당선 가능성이 높으니 이보다 더 좋은 선거는 없다.
그러고 보면 대학의 학생회 선거 모습도 시대에 따라 많이 변했다. 1975년 유신독재정권 시절, 학원의 총화단결과 자주국방 태세를 확립하여 북한의 남침의도에 효율적으로 대처한다는 명목으로 ‘학도호국단’을 창설해 학생회를 대신하게 했다. 학도호국단은 남녀학생과 교원을 모두 포함시켜 군사편제로 조직한 준군사조직이었다.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 학생회 부활과 학도호국단 폐지를 요구하는 사회 전반적인 저항운동이 거세지자 정부는 1985년 3월 대학교의 학도호국단을 폐지하고 학생회 부활을 받아들인다.
이때부터 지금처럼 학생들의 손으로 학생회 대표를 직접 선출할 수 있게 됐다. 당시 학생회 선거의 주 이슈는 범국가적 정치.사회 문제가 대부분이었고, 독재정권의 억압과 부정에 항거하는 시위의 중심에는 항상 학생회가 있었다. 때문에 학생회는 곧 운동권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어 있었고,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것도 학생회가 중심이 된 대학생들의 힘이었다.
1993년 2월 군사독재정권이 종식되었음을 공언하며 문민정부가 출범했고, 이와 함께 대학교의 학생회에도 변화의 바람이 분다. 학생회 선거에 정치적 색채를 배제한 ‘비운동권’ 속칭 ‘비권후보’가 출현하게 된다. 비권후보의 출현으로 학생회 선거이슈 또한 학교 밖의 정치.사회 문제에서 등록금과 같은 학교 내의 현안과 학생들의 복지문제로 점차 옮겨 가게 됐다. 대학교 학생회의 비정치화 추세는 2000년대를 거치면서 운동권 학생회를 찾아보기 어렵게 만들었다.
대학에서 운동권이 사라진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민주적인 사회로 발전하였다는 반증으로 반길 만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학생들의 개인주의화가 심화되면서 학생회장에 출마할 후보 찾기가 힘든 현상도 생겨났다. 이런 현상은 학과 학생회에서 더욱 심각하다. 학과 학생회장을 맡겠다는 학생이 없어 선배나 교수들이 강제로 낙점하는 경우도 생겼다. 그러니 학생회 선거에 단일후보라도 나오는 것은 정말 다행스런 일이다. 그래서일까? 학생회를 둘러싸고 안 좋은 추문이 자주 들린다. 어느 학교는 조폭들이 총학생회를 장악해 문제를 일으켰다고도 하고, 어디는 축제를 주관하며 리베이트를 받고, 어디는 학생회비를 횡령했다고 한다.
참 씁쓸하다. 각박한 현실에 찌들어 적당히 타협하며 사는 기성세대와 달리 도덕적 순수함과 열정, 시대의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사회의 부조리를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 젊은이의 특권이자 의무일진데 기성세대의 악습을 재생산하고 있는 일부 학생회장들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넘어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게 한다. 국민이 정치에 무관심할 때 국가권력이 부패하듯이 학생들이 학생회에 무관심할 때 학생회 또한 부패한다. 학생회에 대한 관심과 참여, 질타와 비판은 보다 나은 학교,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우리 대학생들이 갖추어야 할 민주시민의 기본 습관이다.








신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