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말
무어라 음미해 볼 겨를도 없이 성큼 다가 온 졸업. 관심 있는 이들이 그것을 일컬어 꿈을 갈아타는 것, 새로 출발하는 것 등등의 인구(人口)에 회자하는 어구로 격려와 위안과 기대에 찬 말씀을 들려주지만 그에 상응해서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아쉬움 때문에 찾아드는 착잡함을 어쩔 수 없군.
어느덧 캠퍼스 구석구석에 아름답게 산재(散在)한 어느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의 속삭임에도 귀 기울여 응답할 수 있으리 만큼 교정의 자연에 심취해질 무렵! 잎이 떨어진 자국을 후비고 재생(再生)해 올 새싹의 내음을 차마 떨치고 가야 한다니.
‘너’ ‘나’의 젊은 고뇌가 한데 어우러져 초점 잃은 방황을 반추(反芻) 하다가도 끝내는 되돌아 와 오염된 정신을 추방하고 심경(心耕)에 전념할 때,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없이 포옹해 주더니 포근한 폼을 뒷전으로 남겨야 하나 봐.
풍성한 로맨스가 맞부딪쳐 울리는 웅장한 함성에 감격하여 뜬 눈으로 지새워 구가(謳歌)하던 순간들이 되살아와 가슴이 뛰는데. 그러나 아쉬움이 가장 큰 이유는 최소한의 지성이 자유의 상태에서 머물렀던 때문이요, 와해된 때(時節)에 대한 미련이 큰 때문이리.
무슨 말을 남길 수 있을까?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인간을 ‘로고스(logos)를 갖는 존재’라 정의 했다지. 동질인(同質人), 이상(理想)을 지닌 세대의 주인공들이 배움을 향해 모인 캠퍼스는 언제부터 로고스를 잃고 이처럼 조용한 천국이 됐을까. 도전은 젊은이의 속성이오, 특전일진대 그 도전은 진취의 기상과 성취의 의욕에서 초래되며 양자는 곧 모험을 낳는다. 모험하는 젊음은 풍부한 로고스를 갖게 되고 그것은 도전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슬픈 지대(地帶)는 마음이 소멸한 곳, 로고스가 찌든 곳이다. 이 적막한 교정에 향자적(向自的)이고도, 지성, 탐구, 낭만, 모험을 지향하는 로고스가 큰 종(鍾)이 되어 크고, 높고, 멀고, 길게 울려주었으면 하면서 앞만 보고 갈 테야.
‘아고야’의 고통
김인배(가정과 졸업생)
‘주제에’라는 말이 있다. 무엇인가 시원치 않고 격에 맞지 않는 상태를 비웃어 줄 때 쓰는 표현이다. 졸업을 하며 후배에게 남기고 싶은,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어 달라는 청탁을 받은 나에게 가장 적절한 말인 것 같다.
글을 쓴다는 사실에의 두려움과 공포, ‘적어도 선배라는 자의 말씀이…’라는 누군가의 비웃음을 살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남을 평가할 때 그 사람에게 모든 장점이 고루고루 갖추어 있기를 기대하지 말라는 옛말을 방패삼아 이 글을 쓴다.
보다 멋있고 보람 있는 대학생활을 영위해 보고자 이리저리 동분서주하는 첫 시작. 어떤 학생은 커다란 가방 속을 많은 책과 도시락으로 채우고 도서관과 교수실을 안방처럼 드나들며 진리탐구에 열을 올릴 것이며, 졸업 후의 취직에 대비하여 채용시험에 필요한 실용지식을 쌓기에 여념이 없는 친구도 있고, 강의시간의 출석보다는 서클 활동이나 여러 행사 등에 리더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도 있고, 또 민족과 국가와 사회에 대한 사명감, 책임감, 정의감 등에 불타 행동 제일주의를 내세우는 친구 등 많은 형태(외적인 형태)의 생활을 영위하는 대학생들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많은 형태의 대학생활 중에서 어느 것 하나 나의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적당주의로 졸업장이나 타는 4년을 보낸다면…
진주를 만드는 많은 조개들 중에 ‘아고야’라는 조개가 있다고 한다. ‘아고야’가 입을 벌린 어느 순간 먹이가 될 수 없는 모래가 들어가면 ‘아고야’는 많은 고통과 쓰라림을 받는 과정을 지나야 그 아름답고 값진 진주를 몸에 지닐 수 있다고 한다.
만약 아픔과 고통을 참지 못하고 ‘아고야’가 입속의 오물을 밖으로 내버렸다면 그 값진 진주를 몸에 지닌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고통과 쓰라림을 받으면서도 오물을 밖으로 버리지 않고 자기 내부에서 그것을 변화시켜 진주를 만들어낸 ‘아고야’의 현명함을 우리는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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