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국정감사에서 ‘학점세탁’ 관행이 심해지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모든 대학에 3월까지 ‘학생성적 관리 개선방안’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각 대학에서는 서둘러 학점포기제도, 재수강, 취업용 성적표 발부 등의 기존제도를 변경하거나 폐지에 나섰다. 우리 학교 역시 올해 2학기부터 바로 학점포기제를 폐지하게 되면서 개강을 코앞에 두고 폐지 소식을 접한 학생들은 혼란에 빠졌다. 학점포기제가 학점세탁으로 악용돼 대학 교육의 질적 저하를 불러올 수 있다는 교육부의 우려에 공감하면서도, 막상 극심한 취업 경쟁에서 졸업 평점이 달라질 것을 생각하니 학생들은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다. 이에 학사과에서 학생들의 의견 수렴에 나섰지만 학생들은 썩 달갑지 않다.
하지만 학점포기제를 폐지하기로 결정한 학교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학생들의 취업률이 떨어지면 정부로부터 받는 재정지원이 줄어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 지원금을 결정하는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평가지표에서 ‘학사관리 및 교육과정’의 반영비율이 지난해 10%에서 12.5%로 늘어나면서 제도개선이 불가피해졌다. 대학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으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지원 사업에 참여조차 할 수 없으니 대학은 정부의 방침대로 신속히 제도를 개선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학생들이 제도 개선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겨를도 없이 급하게 제도를 변경한 대학은 정부의 눈치보기가 바쁘다.
이는 정부의 등록금 동결 방침에 따라 대학의 재정이 묶이면서 대학에서 지원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대학의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재정운영을 위해 물가와 인건비가 상승하는 것과 비례해 등록금도 올려야 하지만, 정부의 방침에 따르지 않으면 지원금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정부의 지원금을 받기 위해 등록금을 동결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대학에서는 이제 등록금을 내는 학생들보다 정부의 목소리가 점점 더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우리 학교 역시 정부의 지원을 지속적으로 받기 위해 3년 연속 등록금 동결을 결정해왔다. 이러한 노력으로 지난해 우리 학교가 정부에서 지원받은 연구비는 약 163억 7,700만 원. 이는 전국 10개 거점국립대학 중 8위로 하위권에 속한 금액이다. 반면 서울대학교는 거점국립대학의 전체 연구비 지원예산(4,098억 원)의 절반(1,966억 원)을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정부의 연구비 지원이 10개의 거점국립대학 안에서도 양극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대를 제외한 나머지 거점국립대학의 경쟁은 더욱 치열할 수 밖에 없다. 그나마 받고 있던 지원비마저 줄어들까봐 전전긍긍하며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이 현재 거점국립대학의 현실인 셈이다.
대학 육성을 위해 지원하는 정부의 예산이 이제는 어느 대학이 가장 눈치 있게 정부의 요구를 발빠르게 수용하느냐에 따라 결정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부의 지원금이 ‘눈칫값’이 되버린 오늘, 눈치보는 대학 아래 학생들의 한숨만 더욱 늘어가고 있다.








남지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