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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영화 ‘매트릭스’ 속 장자이야기
제 874 호    발행일 : 2014.03.17 

  잠에서 깨어, 책상 위에 굴러다니는 볼펜을 쥔 다음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는 A4 용지 한 귀퉁이에 무엇인가를 빼곡히 적는다. 혹시나 잊어버릴까, 아직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뇌를 닦달해본다. 바로 꿈이다. 지난밤 꾸었던 꿈을 메모해 두는 버릇은 언제부터였는지 내 일상의 소소한 재미가 되었다. 삶이 지루하고 무료할 때 내가 적어두었던 꿈 메모들을 펼칠 때면 입가에 미소가 절로 번진다.
  꿈은 특이하게도 기상 직후 몇 분까지는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나다가도 몇 시간 후 놀라운 속도로 내 머릿속에서 비워져간다. 일명 ‘개꿈’이라는 것들은 그 속도가 더욱 빠르다. 가끔 너무나 또렷해 마치 영화를 보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게 하는 꿈들이 있는데, 사실 난 이런 꿈들에 관해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다.
  학창시절, 화려한 액션영화라는 타이틀 속에 개봉한 ‘매트릭스’는 그 관심의 기폭제가 되었다. 기계에게 지배당하는 영화 속 인간들은 캡슐 같은 인큐베이터에서 키워지고, 로봇들은 인간의 관리를 위해 가상현실 프로그램을 뇌가 현실이라고 인식하게끔 만든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자신이 인큐베이터 속에서 ‘재배’된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른 체 가상현실 속에서 살아간다. 영화관을 나갈 때즈음엔, ‘키아누리부스’의 멋진 가죽코트만이 머릿속에 남아있었지만 훗날 소름 돋을 정도의 사실적인 꿈을 꾸고 난 뒤면 가끔씩 기묘한 생각이 든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꿈속의 내가 깨어 있는 것인지 뫼비우스의 띠처럼 앞면과 뒷면이 서로 연결돼 무엇이 진짜인지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느낌. 이불을 박차고 일어난 이 상황이, 누군가의 꿈속은 아닌가 하는 의처증은 저리가라 할 만큼의 의구심이 솟구쳐 본 적이 있는 것이다. 옛 중국의 장자님 또한 그 유명한 ‘나비 꿈’을 꾸면서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이 아닌가 싶지만, 장자님께서 제물론(齊物論)이라는 업적을 남기신 걸 보면 나와는 조금 다른 꿈을 궜나 보다.
  결국 찬물에 세수를 하고 난 뒤면 금세 이런 생각들은 사라질 것이고,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는 아무런 지장도 없다. 이날 하루 또한 신호등을 기다리며 횡단보도를 건너는 평소와 조금도 다르지 않는 하루가 이어질 것을 알고 있다. 꿈속의 나비가 나인지, 내가 나비인지는 중요치 않다. 어느 날 갑자기 ‘키아누리부스’가 문을 두드리며 인큐베이터에서 구해주러 왔다고 찾아올 리도 없다. 다만 가끔씩 드는 이런 기묘한 느낌들이 일종의 생리적 현상이라 치부해버리기엔 너무나 아쉽다.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세상의 원리를 믿어보기엔 나이가 훌쩍 지나버렸지만 마음속 어딘가에 ‘피터팬’ 같은 구석이 남아 있나보다.
  세상은 점점 더 계산적으로 변하고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인식으로 넘쳐나고 있다. 그 속에서 한번쯤은 정신을 놓아보자. 꿈속에서 헤어져 나오지 못하고 있노라면 빨간약과 파란약 중 ‘파란약’을 먹으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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