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공채 시즌이 다가오면서 각 기업의 취업 전형방법이나 자격요건 등을 소개하는 신문기사를 많이 보게 됩니다. 예년에도 그랬듯이 스펙보다는 “인성과 열정”을 갖춘 인재를 뽑겠다는 내용이 많구요. 기업체 인사담당자나 CEO 인터뷰 등을 읽어 보면 기업들만의 다양하고 독특한 채용 방식에도 불구하고 “인성과 열정”을 가장 중요한 채용기준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취업을 준비하시는 분들은 공감하시나요? 제 경험에 비추어 보면 “현실을 모르는 말이다”, “인성과 열정을 기준으로 한다더니 스펙이 후덜덜하더라”, “기업의 홍보성 멘트다”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을 것 같습니다. 간혹 ‘취업 뽀개기’, ‘닥치고 취업’ 등 취업 준비생들의 커뮤니티 카페를 보면 채용기준을 문의하며 학점은 3.5에 토익 800점, 무슨 자격증에 공모전 입상 경험이 있다면서도 부족한 것은 없는지 불안해 하는 글을 볼 수 있구요. ‘어느 기업의 스펙은 어느 정도다’라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 넘쳐 납니다. 또한 저질 스펙으로 대기업에 취업했다는 성공담에 도대체 기준이 뭔지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기업과 취업준비생 간의 이런 시각차이는 왜 발생했을까요? 기업은 인성과 열정이 중요하다고 하는 데 취업준비생은 왜 스펙을 쌓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까요?
사실 스펙이란 말은 많이 쓰는데 이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 알기 위해 사전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직장을 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학력, 학점, 토익 점수 따위를 합한 것”으로 신조어라네요.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많이 쓰고 있지만 제가 입사할 즈음에는 들어보지 못한 용어인 것 같습니다. 당시 채용기준을 더듬어 보면 ‘나이 만 28세 미만, 군필 또는 면제, 학점 3.0 이상, 무슨 전공’ 정도였네요. 평범한 대학 졸업생은 모두 충족하는 최소한의 조건이지요. 일부 기업에서 토익점수 하한선을 설정하기 시작한 것도 그쯤인 것 같습니다. 결국 기업의 입장에선 업무전문성과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해 구체적이고 다양한 형태의 채용방식이 나타났고, 취업준비생 입장에서는 다른 후보자보다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한 이해관계가 결합하여 지금의 경쟁적인 스펙 쌓기를 만들어 낸 것으로 생각됩니다.
채용담당자 입장에서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기업이 필요한 인재상에 인성과 열정이 가장 중요한 것은 분명합니다. 사실 기업의 입장에서 신입사원이 하는 일은 배우기 어렵거나 깊은 전문지식이 필요하지 않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그 좋은 스펙을 쓸 곳도 없습니다. 필요하다면 적절한 교육을 통해 충분히 보완할 수도 있습니다. 신입사원은 기업의 문화와 조직생활에 적응하는 일이 더 중요한데 오히려 좋은 스펙은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도 서류전형 합격 기준을 스펙으로 정합니다. 나름 우리회사에 입사하려면 이 정도는 돼야지 하는 결코 높지 않은 기준을 정하고 그에 미달하면 필터링하지요.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입사지원서 보는데 10초도 안 걸립니다. 전공, 학교, 학점, 어학성적만 고려해도 70% 정도는 파쇄기로 향하게 되구요. 이 단계에서 살아 남아야 자기소개서도 좀 읽고, 자격증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어학연수, 인턴, 공모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서류 전형 합격자를 선정하지요. 그런데 그 스펙을 기준으로 필터링하는 이유는 스펙이 좋은 사람을 채용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입사지원서에 인성과 열정을 평가할 만한 객관적인 지표가 없고, 있다고 해도 믿을 수가 없으니 스펙이 좋으면 그렇지 못한 취업 준비생 보다는 업무능력과 열정이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모범생이 직장에서도 모범사원이 될 가능성이 크니까요. 토익 900점이 업무상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그 노력과 열정, 학습 능력을 간접적으로 평가한다는 뜻입니다. 좋은 대학, 좋은 학점도 역시 같은 맥락이구요. 또 취미와 동아리 활동을 통해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를 파악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좋은 스펙을 가진 분들이 회사에서 그 기대에 맞는 업무 성과를 보여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회사의 업무에 만족하지 못하여 열정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스펙에 걸맞은 더 좋은 조건을 찾아 이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취업 스펙에 올인하다 보니 정작 신입사원으로서 필요한 대인관계와 조직적응에서 약점을 보이기도 하구요. 과장되거나 왜곡된 스펙에 속기도 합니다. 역시 인성과 열정을 정확히 평가하지 않고 스펙으로 간접적인 추정을 하다 보니 생기는 결과겠지요. 학점은 높은데 전공지식에 대한 기초조차 없는 경우도 있고, 토익 고득점자가 간단한 영어 질문에 당황하며 점수와 회화는 별개라는 변명을 하기도 합니다. 봉사활동 칸을 채우기 위한 이기적인 봉사활동을 한 경우도 간혹 보게 되구요. 자격증은 많긴 한데 도무지 어떤 목적인지 불분명한 경우도 있습니다. 최악은 어학연수 1년 동안 일만 하다 온 경우로 실망감은 극에 달합니다. 소위 말하는 스펙 인플레이션과 맹목적인 스펙 쌓기의 결과입니다. 이런 이유와 경험으로 저를 포함한 많은 채용담당자들이 스펙을 그리 신뢰하지 않습니다. 채용과정 특히 서류전형 과정에서 스펙은 어쩔 수 없이 중요한 기준이 될 수 밖에 없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 기준은 기업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요건을 충족했는지를 가늠하는 정도로만 활용합니다. 실제 채용 결과를 보면 고 스펙임에도 불구하고 탈락하고, 저질 스펙에도 불구하고 합격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어요. 절대 스펙 순으로 합격자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고 스펙 합격자가 더 많은 건 고 스펙이라서가 아니라 적어도 인성과 열정을 평가받을 기회가 많기 때문이지요.
결국 성공적인 취업을 위해 일정수준 이상의 스펙이 꼭 필요하다는 현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스펙이 스펙다워야 합니다. 본인의 적성과 장래에 대해 충분히 고민해 보고 진로를 결정한 후 그에 맞는 스펙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스펙은 스토리가 탄탄하고 흐름이 분명합니다. 본인이 하고자 하는 꿈과 열정이 정교하게 짜 맞춰져 있고, 그 목적이 분명하며 과정이 일목요연합니다. 실패와 좌절조차 꿈을 실현하기 위한 든든한 배경이 돼 줍니다. 반대로 나쁜 스펙은 허술합니다. 많거나 높기기도 하지만 서로 연결이 되지 않고 다양한 고민과 가치에 휘둘려 진정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합니다. 마치 놀이동산에서 놓친 풍선처럼 허공을 방황하지요. 그 스펙을 얻은 과정에서 본인의 고생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열정이 없어 바람 앞의 촛불처럼 불안합니다. 취업을 목적으로 한 스펙이라서 그렇습니다.
대학생활 그 자체보다 절대적인 스펙은 없습니다. 전공 공부, 동아리 활동, 문제 해결능력과 리더십, 상대를 존중하고 다양한 가치를 포용할 수 있는 넓은 마음,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은 대학생활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분명한 목적이 없는 사회경험, 봉사활동, 어학연수 등은 청춘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하나하나가 목적을 가질 때 의미가 있고 나의 스펙이 되는 것이지요. 스펙의 개념을 “직장을 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학력, 학점, 토익 점수 따위를 합한 것” 에서 “꿈과 비전을 실현해 나가는 진실한 나의 현재 모습”으로 바꾸세요. 우리 삶은 좋은 직장에 취직했다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졌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꿈과 비전을 실현해 나가느냐에 달려 있으니까요.
<글 올릴 순서>
① 적성과 장래에 대한 진지한 성찰 ⑤ 막막한 자기소개서
② 스펙 쌓기에 대한 유감 ⑥ 두근두근 면접
③ 왜 외국어를 배우세요? ⑦ 에필로그
④ 대기업 vs 중소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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