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책 제목을 듣고는 ‘레디메이드가 뭘까, 주스 이름이라도 되는 건가’라며 엉뚱한 생각을 했다. 이렇게 의문점이 들자 먼저 레디메이드라는 단어를 찾아보게 됐다. ‘레디메이드란(ready-made)’란 ‘기성복과 같이 미리 제작된’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이야기는 주인공 P에게서 시작된다. P는 동경유학에서 돌아와 아내와 이혼하고 아들은 형에게 맡긴 채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다. P는 취직자리를 구하고 있었고, 모 회사의 K사장에게 취직을 부탁했지만 거절당하고, 시골에 내려가는 게 어떻겠냐는 소리를 듣는다. P는 뛰쳐나와 총독부 쪽으로 걸어가면서 일제 세력과 신흥 부르주아 계급들이 교육열을 부추겨 실업 지식인들이 양산된 것이라 생각한다. 집에 돌아온 P는 시골의 형으로부터 아들을 데려가라는 편지와 아들이 올라온다는 전보를 이어서 받는다. 아들이 온다는 소식에 P는 어느 인쇄소의 문선과장을 찾아 아들을 써달라 부탁한다. 문선과장은 왜 아들을 공부 시키지 않느냐고 의아해하지만, P는 그래도 써달라고 부탁한다.
채만식의 작품은 풍자와 해학, 반어적 표현으로 유명하다. 이 작품 역시 채만식 특유의 표현인 역설적인 풍경들이 돋보인다.
1930년대, 일제 치하에 있던 우리나라, 일본의 식민지 정책, 수많은 실직자와 실업 지식인들... 어쩔 수 없었던 시대상황으로 인하여 생겨버린 것이다. 사회로부터 버려진 지식인, 그러한 현실은 일제에 의해 벌어진 것이다. <레디메이드 인생>에서는 개인을 둘러싼 사회의 잘못을 곧바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회 속에 못나게 서 있는 자신을 비하하고, 이 세상을 부정하며 부조리한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 구절인 ‘레디메이드 인생이 비로소 겨우 임자를 만나 팔리었구나’라는 부분에서 처음에 의문을 가지고 찾아보았던 단어 ‘ready-made’의 뜻을 상기시켜게 됐다. 주인공 P는 고학력 지식인이었지만 정작 직업을 갖지 못했다. 생각해보니 여기서 말하는 레디메이드 인생이라는 것은 주인공 자신의 인생을 뜻하는 것이다. 또 아들을 인쇄소에 써달라고 부탁한 이유는 아들이 자신과 같은 인생을 살지 않기를 바랬던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P의 행동이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아스럽고 묘했다. 그리고 정말 당시 사회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아무리 어려워도 P는 아들을 크게 키우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너무나 이 세상에 대한 회의가 컸던 것을까. 정말로 아들을 위하는 일이 인쇄소에 보내는 것이었을걸까. 그가 내린 결정이 맞는 것인가. 어떤 것이 정답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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