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즐겨보는 TV 예능프로그램 중에 출연자들이 매회 우리나라의 한 지역을 여행하며 웃음을 주는 것이 있다. 그들의 웃음은 주로 게임을 통해 만들어지는데 이기고 지는 것에 따라 식사와 잠자리의 질이 결정된다. 이들이 하는 게임 중 가장 재미 있는 것이 일명 ‘복불복(福不福)’ 게임이다. 빛깔이 비슷한 콜라와 간장, 커피와 까나리 액젓을 각각 컵에 담아 섞어 놓고 골라 마시게 하거나, 캡사이신과 고추냉이를 듬뿍 놓은 음식과 진짜 음식을 섞어 놓고 골라 먹게 하는 게임이다. 실력과 노력으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안 걸리면 복이 있고, 걸리면 복이 없는 복불복이 게임을 좌우한다.
복이 없어 간장이나 까나리를 마시고, 캡사이신과 고추냉이를 먹는 출연자를 보며 껄껄 웃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저들은 고통스러운데 나는 왜 즐거워하지?” 출연자들의 일그러진 표정과 코믹한 행동이 웃음을 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만약 내가 그 프로그램에 출연해 복불복 게임을 할 확률이 1%만 있어도 난 그렇게 웃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내가 프로그램에 출연할 일이 없으니 불복이 될 일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난 그들의 고통을 보며 즐겁게 웃을 수 있다.
지난 4월 16일 일어난 비극으로 우울하고 침통한 세월을 보낸 우리사회는 무엇 하나 해결된 것 없이 이젠 됐으니 앞으로 나가자는 사람과 철저한 원인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통해 재발을 방지하자는 사람으로 갈라져 있다. 지난하고 지루한 유가족들의 싸움과 축소되고 왜곡된 언론보도에 국민들의 관심도 식어가고 있는 듯하다. 이런 일련의 상황을 보면서 필자는 우리가 복불복 사회를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수백의 애달픈 죽음을 ‘교통사고’에 비유하며 더 중요한 일이 많으니 이제 그만하자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은 이 애달픈 죽음을 단지 복이 없어서 찾아왔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다른 나라에선 패선됐을 여객선을 수입하도록 규제를 풀어준 정부, 그 배를 무리하게 개조해 안전에 문제가 있는 데도 안전검사를 통과시킨 해운조합, 이미 정상항로를 이탈해 이상 조짐을 보이는 배를 보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해상교통관제센터(VTS), 사고 현장에 출동해 침몰하는 배에서 제일 먼저 선원들을 구해낸 해경, 안내방송이 시키는 대로 배 안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생명들을 단 하나도 구하지 못한 정부의 무능, 이 모든 것이 그들에게는 단지 복이 없는 이들에게 닥친 우연한 사고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인가.
고통받는 예능프로그램 출연자를 보며 껄껄 웃고 있는 필자처럼 그들은 이런 사고가 자신에게 일어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본인이 이런 사고를 당해도 그저 자신의 복불복으로 돌릴 만큼 죽음에 초연한 것일까. 안전에 문제가 있는 교통수단을 이용할 일이 없는 우리 사회 특권층이라면 전자의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지극히 평범한 우리들 중 전자 혹은 후자의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당신의 생각이 전자라면 이는 커다란 오산이고, 후자라면 우리 사회에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사고를 복불복으로 돌리는 사회는 어떤 개선의 노력도 하지 않을 것이고, 한 번 일어난 사고는 계속 반복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과 당신 가족의 생명을 앗아갈 불복은 찾아올 확률이 점점 높아질 것이다.
자신들의 허물을 덮기 위해 사고 해운사 실소유주에게 모든 과오를 덮어씌워 묻어버린 것으로 일을 마무리진다면 우리 사회는 희망 없는 복불복 사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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