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계절 가을이다. 꽹과리와 장구를 앞세운 풍물패의 가락에 어깨춤이 절로 나고, 학생들의 웃음과 함성이 교정에 가득하다. 환하게 웃는 청춘들의 얼굴은 참 보기 좋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늘 젊은이들을 보고, 말하고, 부딪힐 수 있는 대학에서 일하는 것이 행운이라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사람이 태어나 한 평생을 살면서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시절,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몇 번이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절, 그것이 청춘이리라. 청춘이 좋은 이유는 정말 많다. 청춘은 건강하다. 육체적인 건강은 물론이고 세상 때가 묻지 않아 정신도 건강하다. 그래서 청춘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순수하다. 청춘은 꿈을 꾼다. 꿈을 꾼다는 것은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이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누구도 청춘을 무시하지 않는다. 청춘은 정의롭다. 불의와 불합리에 타협하지 않고, 세상이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청춘은 세상을 진보시키는 원동력이다. 청춘은 조건 없이 사랑한다. 애인, 친구, 이웃은 물론이고 자신의 신념이나 일과도 조건 없이 사랑에 빠지며 의리와 열정을 다 바친다. 그래서 청춘은 세상의 희망이다.
그런데 지금의 청춘들은 스스로를 이렇게 생각할 수 없을 듯하다. 과거의 대학생들도 취업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요즘의 대학생들은 그 정도가 다르다. 점점 좁아지는 취업문 탓에 학교 학점관리와 공인된 영어점수 취득은 기본이고 자격증, 대외활동, 자원봉사, 기업인턴, 해외연수 등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그뿐인가? 산업현장에 바로 적응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한다는 명목으로 ‘공학인증제’라는 것도 생겨났다. 기업이 학교에 자신들이 필요한 교과목 편성을 주문하고 학교는 그 주문대로 학생들을 교육시켜 산업현장에 취업시키겠다는 취지다. 여기에 정부와 몇몇 언론사에서 시행하는 대학평가에 취업률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면서 대학들은 취업률을 높이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으며, 일부 대학에서는 취업률이 낮다는 이유로 기존의 학과를 폐지하거나 통폐합하는 등 대학(大學)이기를 포기하는 곳도 늘어나고 있어 대학생의 자유로운 학문 탐구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더욱이 정부의 대학평가는 대학에 주는 정부의 지원금 규모와 연계돼 있다. 또한 대학에 진학할 학생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 수적으로 많아지고 규모 면에서 비대해진 대학들을 구조조정 해야 할 시점이 됐다. 때문에 일부 상위 대학교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대학들은 대학평가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고, 대학평가를 잘 받기 위해선 취업률을 높여야 하며, 학생들은 대학교육이 아닌 취업교육을 받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마치 의자 수를 늘릴 생각은 하지 않고 ‘의자 앉기 게임’을 시키는 것과 같다. 의자 수를 늘려야 할 정부와 기업은 뒷짐 지고 심판만 보고, 게임에 참가하는 선수인 대학생들은 자신의 민첩성과 순발력이라는 스펙 쌓기에 몰두한다. 그리고 심판은 게임에서 탈락한 학생들은 오로지 그들을 가르친 대학의 잘못이라 몰아세우는 것과 같다.
누군가는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청춘들을 위로했다. 하지만 청춘들의 아픔이 그들 스스로가 짊어져야 할 당연한 몫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 몫보다 더 무거운 몫을 하나 더 얹어놓은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대학생을 비롯한 모든 청춘들이 청춘으로서의 권리를 누리고, 의무를 다할 수 있게 이젠 사회와 국가가 나서야 한다. 청춘들이 청춘답지 못한 나라의 미래가 어떨지 이젠 제대로 생각해 볼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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