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주로 찾아오는 마감. 시험기간에도 신문사의 마감은 피해갈 수 없다. 편집을 마무리 하는 이 순간까지도 기자들은 전공책이 아닌 최종 편집면을 들여다보느라 두 눈이 붉게 충혈돼 간다. 이렇게 각고의 노력 끝에 나온 이번 신문은 과연 몇 명의 독자들에게 읽혀질 것인가. 가판대에 고스란히 쌓여있는 신문들을 보며 필자는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사실 대학언론에 종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비난과 비판이 아니다. 비난이 있다면 적정한 수준에서 그 의견을 취사선택하면 되고, 비판을 받는다면 그것을 합리적으로 수용해 신문 발전의 아이디어로 활용하면 된다. 필자에게 정작 두렵고 무서운 것은 독자들의 ‘무관심’이다. 아무리 잘 만든 신문일지라도 신문의 활자가 학생들의 입과 귀를 통해 살아 숨쉬지 못한다면 그 신문은 ‘죽은 신문’이기 때문이다.
이는 대학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학평가와 대학지원사업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어도 이에 대한 학내구성원의 관심이 없다면 이는 빛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실제로 필자가 지난 2년간 대학부 기자로 활동하며 취재를 위해 만났던 학생들 대부분은 학내외 사안과 이슈에 큰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그들이 뽑은 학생자치기구에 대해서도 무관심했다. 물론 학내 여러 사안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취재에 협조해준 학생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정말 극소수에 불과했다. 교직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기 보다는 가시적인 성과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학교에 관심없는 학생과 학생들에게 관심없는 학교 사이에서 제대로 된 소통이 이뤄질 수 있었을까.
이럴 때일수록 충북대신문이 여론 형성의 ‘장’으로서 제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대학언론으로서 학내 주요사안과 이슈를 취재해 학생들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하나라도 더 많은 학내구성원의 목소리를 듣기위해 직접 발로 뛰었다. 학생들의 목소리를 학교 측에 전달하고 학교 측의 입장을 학생들에게 전해주며 소통의 연결고리가 되고자 했다. 그리고 필자는 학내구성원의 관심이 모여 불러온 놀라운 결과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수강신청, 평생사제, 의무급식제를 비롯한 각종 시설 문제 등 신문에서 학내구성원의 주목을 받은 크고 작은 문제들이 실제로 개선된 것이다.
필자는 앞으로도 남은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 관심이 필요한 학내 주요 사안과 각종 정보들을 신문에 담아내고자 한다. 충북대신문이 여론 형성의 ‘장’으로서 학교에 대한 학내구성원들의 관심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신문에 담긴 여러 사안들이 학내구성원들 사이에서 공론화되고 이에 대한 많은 논의가 이뤄지길 소망한다.








신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