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할 때, 한없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싶을 때 보는 영화
이 영화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위의 글귀와 같다. 처음 제목과 포스터를 보았을 때는 장르가 코미디인지 공포인지 궁금했지만, 막상 보니 소름 끼치도록 현실적인 잔혹 동화였다.
도쿄에서 백수생활을 하던 쇼는 행방불명이 되었던 고모 ‘마츠코’가 사체로 발견되어 유품을 정리하라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물건을 정리하며 생면부지였던 마츠코의 일생을 접하게 되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그의 25년의 생활을 돌아보게 된다.
백조를 동경했는데 눈을 떠보니 시커먼 까마귀가 돼 있었다
이 영화에서 마츠코는 어릴 적에는 보통 사람들과 같이 행복한 미래를 꿈꾸면서 명랑하게 지냈고, 아버지의 말도 반항 없이 받아들이며 자랐다. 하지만 그가 교편을 잡자 담당하던 학급에서 절도 사건이 일어나 해고당하고, 사랑하던 남자에게 폭력에 시달리고, 불륜 행위를 하다 걸려 버림받고, 창녀가 되고 또다시 사랑하던 남자에게 버림받아 남자를 살해해서 교도소에 가게 되고, 출소 이후 어릴 적 절도 사건의 주범이던 학생과 사랑하다 그 남자는 교도소에 가게 되고, 끝끝내 마츠코는 강변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이렇듯 그는 인생이 끝날 듯한 고난을 겪었지만, 매번 다시 일어나 밝게 살려고 했다.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그가 죽기 전 방안에 남긴 말이다. 왜 마츠코는 이토록 비극적인 삶을 살았을까? 그는 단지 ‘사랑’만을 원했다. 병약한 동생에게만 온 정성을 다하는 아버지의 관심을 끌기 위해 매번 웃긴 표정을 짓고, 단지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 자신을 버리고 모든 일을 했고, 그래서 폭력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미소 지으며 혼자서 “맞아도 괜찮아, 죽어도 괜찮아, 외톨이인 것보단 나아”라는 말을 하며 자신을 다독였다. 정작 그는 다른 이에게는 사랑을 줬으나 그 자신을 돌보지 않아서 불행해지진 않았을까?
이런 불행한 장면이 이어지면서도 영화는 전체적으로 마치 동화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지독한 삶에서도 그는 한없이 밝았고 미소를 지었다. 마치 위에서 언급한 이 영화의 포스터와 제목처럼 말이다.
또한, 그의 일생은 혐오스러웠지만, 그는 혐오스럽지 않았다. 자신이 준 만큼 되돌려 받길 원하지도 않았고 그저 약간의 사랑을 원했을 뿐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에게 사랑을 주지 않고 오히려 그가 가진 것을 가져갔기에 그는 불행했다.
때론 ‘만약 마츠코가 사랑한 사람 중에 단 한 명이라도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마츠코의 인생은 이렇게 불행해졌을까?’ 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 삶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하는 것이고 또 사랑받는 것”이란 물랑루즈의 대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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