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신문사의 마감현장을 보고 ‘전쟁터’와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전쟁터. 이보다 적절한 표현이 또 있을까. 여기 저기서 울리는 전화벨과 쉼없이 들려오는 인쇄소리와 타자소리. 반복된 퇴고로 붉게 물든 원고가 가득 쌓인 책상에서 마지막 한 글자까지 고군분투하는 기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감기간의 신문사는 진정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필자가 이 ‘전쟁터’에 발을 들인지도 어언 3년의 시간이 흘렀다. 충북대신문이 필자의 대학생활 전부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신문사의 마감은 고됐지만, 결국 완성된 지면을 발행하고 날 때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뿌듯함이 가슴을 가득 메웠다. 그렇게 수습기자시절부터 편집장의 자리를 내려놓는 지금 이 순간까지 필자는 총 45번의 마감을 거쳐 45개의 신문을 발행했다.
45개의 신문을 발행하는 동안 필자는 무수히 많은 고민과 마주해야 했다. 보다 객관적으로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어떤 어휘와 표현을 써야 하는지,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한 편집은 무엇이 좋은지 등 기사작성에서부터 신문 디자인까지 고민의 폭은 끝없이 넓었다. 그 중에서도 기자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수도 없이 해온 것 같다. 단순히 기사를 작성하는 사람이라는 ‘정의’를 넘어 ‘의의’를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의의’는 생각보다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바로 ‘기자(記者)’라는 이름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기자는 한자어 그대로 풀이하면 ‘기록하는 사람’이 된다. 일전에 필자가 기사작성과 신문 디자인에 대한 교육을 위해 중앙일보를 방문했을 때, 현직 기자 한 분은 “조선시대 사관들이 그러했듯이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 역사의 한 순간을 기록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기자는 단순히 기사를 쓰는 사람을 넘어 역사의 한 단면을 기록하는 사람인 것이다.
필자는 충북대신문 기자로 임하며 우리 학교 역사의 한 순간을 ‘기록’하는 사람으로써 무거운 책임과 사명감을 느꼈다. 때로는 그 사명감이 필자의 어깨를 무겁게 할 때도 있었지만, 기자로 임하며 마주해야 했던 외부의 압박과 취재의 시련을 견디게 해준 견고한 신념이 돼주었다.
이제 필자는 임기를 마무리하고 신문사를 떠나 다시 학생으로 돌아간다. 임기동안 고민했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나가는 것 같아 해방의 기쁨보단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충북대신문의 ‘기자’들은 끊임없이 변화를 꾀하며 발전을 거듭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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