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나다. 엄청난 영화다. 지구에서 튕겨 나온 브라운관이 화면 한 켠에 자리 잡고서 크레딧이 올라가며 병구가 지나온 날들을 되짚는 동안 참 엄청나다는 생각만 했다. 내내 무지막지하고 마지막 십 여분에 다다라 훨씬 무지막지해진다. 힘껏 모든 이야기를 토해낸 화면 앞에서야 보던 이는 당혹해서 영화를 돌이켜 본다.
영화 전체를 이끄는 병구의 믿음은 도무지 믿을 법한 것이 아니다. 가까운 개기월식에 지구에 침투해 있던 외계인들의 중개로 지구는 외계로부터 침략당할 것이며 이를 구할 방도는 중개자 외계인을 납치하여 외계무리를 소탕하는 것뿐이라는 말에 대다수의 관객은 설득되지 않는다. 대신 논리적 증거로부터 기인하지 않은 것이 분명한 그의 망상 경위를 제가끔 추측한다. 추측은 그가 온갖 폭력의 피해자였고, 사랑하는 이들이 그 폭력으로 다치는 일 가운데서 살아왔음이 밝혀지면서 얼개를 갖추고, 그가 납치하고 고문한 사람들이 그 폭력을 휘두른 당사자였다는 사실로 공고해진다.
그들이 외계인이 아니라 지구인이라면 같은 종족에 그토록 폭력적일 수는 없을 것이라는 논리가 망상의 근거가 될 것인데, 그가 접한 폭력이 지극히 사회구조적 불합리에서 야기된 것이라는 점이 이러한 논리에 더해 영화의 한 맥락이 드러난다. 가진 이의 갖지 못한 이에 대한 무심한 폭력이 차라리 외계로부터 조작된 것이라는 이해가 더 합당할 만큼 비인간적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해당 맥락에서 폭력의 사회성에 주목해 쓴 글들이 많은데, 필자는 비인간적 폭력에 오래 노출된 병구의 상태에 집중해 영화를 읽었다.
세알만 먹으면 세상이 내 것이라는 마약을 한 주먹 넘기고 나서야 외계 침입자에 대한 처단을 행할 수 있는 병구는 그의 행위에 비해 심약한 인물이다. 그의 심약을 저지하는 것은 지구를 지키는 일에 대한 강한 집착인데 이는 그의 집착이 현실의 고통을 타개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인 탓이다. 선택한 적 없는 고통 속에서 못 버텨 집어든 책의 낭설에 그는 단단히 홀렸고, 현실을 포기하고 낭설이 현실이 된 세계의 세계관을 주조해 작금의 고통을 해결할 방도를 찾았다. 그의 세계는 외계의 침략과 그 자신이 분한 영웅의 등장과 결국 침략을 저지한 영웅에의 환대와 인정으로 이어지는 전개를 갖고 있었고, 그 세계 속에서 병구는 미래를 기대할 수 있었다.
그의 노력에도 그의 믿음은 불안정하고, 일은 그가 갖추어 놓은 시나리오대로 흘러가지 않으며, 영화는 병구가 끝내 무엇 하나 지키는 일을 허락하지 않는다. 폭력이 틔워낸 그의 폭력성은 그가 지키려던 지구에 대해 외계가 희망의 전무를 선언하는 근거가 된다. 택한 적 없는 고통의 영향에서 그는 기어이 벗어나지 못 하고, 보던 이는 외계인 없는 지구로 그를 데려오는 일을 주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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