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단의 상자를 열고 만 여인 판도라. 호기심으로, 인류에게 불행과 재앙을 맞게 한 그녀처럼 기자도 기대에 부풀어 베이비 박스를 열었다. 참담한 현실과 마주하게 됐을 때, 허둥대며 상자 문을 닫아보려고 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바로 뒷면의 ‘사람이쓔’ 기사 표제를 보면 현재까지 베이비 박스에 704명의 아이가 방문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기사의 초고는 699명의 남매를 표제로 뽑았었다. 방금 초고를 받아 본 전도사의 전화를 받고 704명의 남매로 급히 수정했다. 불과 일주일 사이에 5명의 아이가 맡겨졌다. 칼럼을 쓰고 있는 지금도 한 명이 더 추가되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이 많은 아이를 지금껏 단 두 곳의 교회에서 받고 있다.
베이비 박스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 <드롭 박스>.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지만 반응은 제각각이다. 이종락 목사는 시사회에서 뭉클한 장면을 목격했다고 했다. 커다란 체구의 한 외국인 사내가 영화가 끝났는데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한참 동안 오열하는 장면이었다. 대체로 이 영화를 본 외국인들은 영화가 끝나도 엄숙한 분위기 속에 자리를 뜨지 못한다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 관객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지루하고 재미없는 영화라는 평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베이비 박스에 맡겨진 아이들을 가슴으로 품는 아버지는 존재하지만, 그들을 길러줄 어머니는 이 세상에 없다. 그들을 보호해 줄 관련된 법이 존재하지 않아 아이들은 입양 갈 권리조차 부여받지 못한다. 베이비 박스에 맡겨진 아이들은 모두 보육시설로 향하는 까닭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또 다른 어머니를 찾게 해줄 방도는 보이질 않는다.
베이비 박스를 운영하고 있는 이종락 목사는 더 이상 베이비 박스를 운영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뜨거운 감자로 논란이 되고 있는 베이비 박스. 그러나 논란은 지금으로 충분하다. ‘베이비 박스’에 대한 찬반 이전에 본질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할 것이다. 진정한 ‘유기’는 누가 하고 있는 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기자는 신생아 유기에 무관심한 국가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대신 이 모든 현상에 무뎌져 있는 우리들 자신에게 비난의 화살을 겨누고 싶다.
판도라 상자와 베이비 박스. 두 상자는 닮은 점이 있다. 기자는 판도라 상자에 함께 봉인됐던 ‘희망’이 베이비 박스에도 함께 머물고 있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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