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일어나 수업을 들으러 간다.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혼자 끼니를 해결하고는 다시 수업을 듣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하루 종일 대화는 거의 없다. 노량진 고시촌의 모습일까? 아니다. 우리가 다니는 대학가의 모습이다.
대학은 ‘낭만’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요즘 대학가는 그 말이 무색할 정도로 낭만이 사라지고 있다. 낭만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에는 개인주의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혼밥(혼자 먹는 밥)’, ‘독강(혼자 듣는 강의)’ 등의 단어가 대학가에 등장했고 소위 자발적 아웃사이더(이하 아싸)를 자칭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대학은 더 이상 낭만을 향유하는 공간으로 불리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자발적 아싸를 자칭한 학생들에게 낭만의 향유공간인 대학의 분위기를 삭막하게 만들었다고 비난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자발적 아싸는 높은 학점과 스펙, 다양한 대외활동 경험이 취업으로 직결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학생들의 궁여지책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학창시절의 낭만을 쫓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낭만을 포기해야 하는 그들의 심정이 어느 정도 이해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안타까운 점은 자발적 아싸의 태도에 있다. 자발적 아싸 대부분이 아싸를 벗어나야겠다는 의지가 결여돼 있을 뿐더러 지나치게 스펙을 대학 내 인간관계보다 중요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발적 아싸가 늘어가는 대학가 분위기가 증가하면서 자발적 아싸를 자칭하지 않는 대학생들은 마치 스펙에 관심 없고 낭만에 젖어 사는 한량처럼 비춰질 우려가 있다. 분명한 점은 자발적 아싸는 사회 분위기 속에 스펙을 선택한 것이고, 그렇지 않은 대학생들은 스펙보다 사람간의 관계를 더 좋아하는 것이리라.
이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문구를 들이밀며 공감능력이 의사소통의 기본이니 공동체 생활을 해야 한다고 강요하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필자는 비자발적 혹은 자발적 아싸들에게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둘러보길 권하고 싶다. 아싸도 결국 인간이고 결국 어디가 됐든 사회 조직에 속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어찌됐던 자발적 아싸는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사회에서 실패를 두려워해야 하는 대학생들의 우울한 초상이 됐다. 기성세대에게도 한 가지 권하고 싶다. 두려움이 만들어 낸 자발적 아싸들에게 “아프니까 청춘이야”라고 말하기보다는 “넘어져도 괜찮아. 털고 다시 일어서면 돼”라는 위로의 말과 함께 손을 내밀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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