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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헤테로토피아로서의 대학
제 891 호    발행일 : 2015.04.20 

  군대나 경찰이 대학 캠퍼스를 점유했던 때가 있었다. 사회 질서를 위협하고 그것에 저항했던 대학이라는 이질적 공간을 무화시키기 위해 물리력의 사용을 주저하지 않았던 시대의 일이다. 그러한 야만의 시대가 오늘날의 대학생들에게는 매우 낯설고 이질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옛날 옛적에...’로 시작되는 먼 옛날이야기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그것보다 더 무섭고 야만적인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 곤봉과 최루탄은 없지만, 그것 보다 더 강력한 힘이 대학을 점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힘은 물리적 힘이 아니기 때문에 가시적이지 않으며 폭력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그 효과는 훨씬 더 파괴적이고 광범위하다. 일반적으로 가장 철저한 통제와 지배의 방식은 자발적인 종속을 유도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종속을 마치 자신의 자유이기라도 한 것처럼 간주할 때, 지배는 가장 견고해진다. 물론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인간은 누구나 지배받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 지배는 외적 강제가 아니라 객관성, 합리성, 자유, 부드러움 등의 형식들을 가져야 한다. 오늘날 대학들이 점령당하고 있는 방식이 정확히 이런 것이다.
  언젠가부터 대학들을 계량적으로 평가하여 순위를 매기기 시작하면서 대학들은 무한 경쟁의 시대로 진입했다. 경쟁은 모두에게 동일한 기회를 주고 효과를 극대화하는 합리적 절차로, 그리고 평가 잣대로써의 수량화는 객관성의 증표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가상일 뿐이다. 상이한 조건들에 놓인 사람들에게 공평한 기회란 기만이고, 효과의 극대화는 질적 향상을 담보하지 못하는 수량적 증가일 뿐이기 때문이다. 또한 수량적 평가는 편의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며, 복합적이고 종합적인 평가에 대한 무의지와 무능력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각 대학은 수치 경쟁에 몰두하고 있다. 이제 대학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기업이 된다. 자신을 실제로 어떤 모습으로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는 오직 내가 어떻게 보이는가에만 관심을 갖는다. 대학은 연구와 교육을 위해서가 아니라 평가를 위해서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학에 고유한 비판정신과 학문적 진지함은 사라지고, 대학은 스스로를 세속화하고 천민화하고 있다. 재정지출을 줄이기 위해 대형 강의를 만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처에 ‘잘 가르치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대학이 어디까지 타락할 것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경쟁의 메커니즘은 경쟁 당사자들에게 하나의 떨쳐버리기 힘은 유혹을 던져준다. 내가 그 경쟁에서 승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이 그것이다. 그러나 경쟁은 궁극적으로 모두를 파멸로 이끌고 간다. 경쟁을 강요하는 통치자들은 누구보다도 이것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대학을 경쟁시킴으로써 청년 실업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절대 믿지 않는다. 젊은이들의 일자리는 대학이 아니라 정부가 마련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대학들에게 취업률 경쟁을 강요하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대학을 ‘직업훈련소’나 기업과 같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다시 말하면, 대학을 사회의 논리에 부합하고 그것의 요구에 순응하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오늘날 한국의 대학들이 ‘삼성’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대학은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 즉 사회 안에 존재하지만 그것에 ‘이질적인 장소’로서 존재하고 기능해왔다. 그리고 이 다름과 이질성은 사회를 변화시키고 발전시켰던 동력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대학에서 목도하고 있는 것은 이 헤테로토피아의 붕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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