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는 5학기째 대학부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취재를 하면서 대학부 기사에는 실을 수 없지만 경험하고 느꼈던 본인의 입장을 기자의 눈이라는 코너를 빌려 말하곤 했었다. 하지만 이번호 기자의 눈을 쓰면서 ‘만약 기자로 활동하지 않았다면 학내 구성원들 앞에서 본인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까’ 자문해보니 그에 대한 대답은 ‘No’였다. 때문에 학내에 붙은 대자보나 농성이 새삼 대단해 보였다. 그러나 한편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다. 기자도 학내에서 학생들이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기사를 통해 개선의 필요성이 회자됐으면 하는 마음에 기사를 쓴다. 지금 농성을 하고 있는 학생들도 같은 마음으로 대자보를 게시하고 농성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자는 이번 농성에 대한 취재를 하면서 답답했던 부분이 있었다.
대자보는 대학 문화의 거울이다. 자칫하면 게시물의 내용이 게시물을 부착한 단과대, 더 나아가면 우리 학교 전체의 입장으로 내비쳐질 수 있다. 하지만 ‘진짜 대학’ 기획단에 대해 명확히 알려진 게 없다. 중앙동아리처럼 우리 학교에서 인준을 받은 단체도 아니고, 누가, 얼마만큼의 규모로 소속돼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단체의 이름도 ‘시사톡’, ‘4.16 대학생 기획단’ 등 다양했다. 때문에 대자보의 내용이 어떤 단체, 누구의 입장인지 명확히 알기가 어려워 게시물에 대한 책임 또한 명확하지 않았다.
또 학교에서는 각 단과대 학생회에 단과대가 관리하는 영역에 게시되는 대자보를 관리할 권한을 위임했다. 이에 각 단과대 학생회에서는 나름의 규정을 가지고 게시물을 관리한다. 규정에는 게시물의 크기, 형식, 게시 날짜 등이 포함돼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게시물로 게시판이 뒤덮여 게시판을 사용하고자 하는 또 다른 학생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학생회에서 정한 규칙을 바탕으로 중간 역할을 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타당하지 않은 이유로 규칙들이 하나 둘씩 어긋나면 학교의 질서를 무너뜨릴 위험이 있다. 성숙한 대학 문화는 사소한 것을 지키는 것에서 시작된다.
칼럼이든 대자보이든 그 내용에 필자의 주관과 감정이 배제될 수가 없다. 때문에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특정 단체의 일방적인 알림판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학내 구성원의 진정한 의사소통의 공간으로 대자보가 활용되기 위해서는 일방적인 시각으로 의견을 표출하기보다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근거와 대안을 제공해야 한다. 불편한 부분, 개선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농성을 하고 대자보를 붙이면서 그것이 학내 구성원의 이해를 끌어내지 못한다면 벽에 대고 말을 하며 답이 돌아오길 바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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