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대신문방송사 충북대신문 The Chungbuk Times 교육방송국
전체기사종합취업대학사회광장사람특집문화동영상뉴스포토&만평학술현상공모전문학
최종편집 : 2026.09.07 월 19:58
광장
광장 섹션
확대축소프린트
 신문사
[사설] 알파고의 교훈
제 904 호    발행일 : 2016.03.21 

  세기의 대결로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구글의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은 결국 알파고의 승리로 끝이 났다. 4승 1패.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그만큼 놀라움은 클 수밖에 없고, 이 놀라움은 새로운 의구심과 염려를 낳고 있다. 이 경이로운 기계가 앞으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그것은 우리 인간의 삶에 어떠한 변화를 만들어낼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인간이 만든 기계가 인간의 능력을 추월한 경우는 수없이 많다. 기중기나 자동차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컴퓨터가 그렇다. 그렇다면 이 기계들과는 다르게 유독 알파고가 우리를 그토록 당혹스럽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알파고가 우리를 추월한 영역이 어떤 물리적 힘이나 속도가 아니라 지능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다른 사물들과 자신을 구별시켜주는 고유성을 지능, 즉 생각하는 능력에서 찾았다. 고대 철학자들이 인간을 ‘이성적 동물’로 정의하거나, 데카르트가 ‘코기토’(나는 생각한다)에서 나라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발견했을 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바로 생각함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생각함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우월성의 증표로 여겨졌다.
  그런데 알파고의 승리는 인류가 수 천 년 동안 가져왔던 이 믿음을 붕괴시켰다. 우리 인간만이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더 나아가 우리보다 더 뛰어난 사유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 인간이 스스로에게 부여해 왔던 지위, 세계의 중심이고 가장 뛰어난 존재라는 위상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이것은, 우리 인간이 사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백함으로써 사유의 대전환을 만들어냈던 코페르니쿠스의 혁명보다 더 파괴적인 것처럼 보인다.
  코페르니쿠스 이후에 근대인들이 그랬듯이 이제 우리도 다시 물어야 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생각이 인간에게만 고유한 것이라는 믿음에는 생각하는 능력은 매우 특별한 것이라는 전제가 있다. 그러나 알파고는 생각이라는 것, 더군다나 우리에게 창의적인 것처럼 보이는 생각도 사실은 아주 기초적인 작용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학자들에 따르면 ‘생각하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cogito는 ‘모으다’라는 뜻의 라틴어 cogo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어원에 따르면, 생각이란 사실들(data)을 모으고, 그것들을 특정한 방식으로 관계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생각이란 어떤 특별한 존재만이 할 수 있는 작용이 아닌 것이 된다. ‘천재’ 이세돌의 생각과, 단순히 보고 듣고 지각하면서 그것을 이미 지각한 것과 관련시키면서 이해하는 어린아이의 생각은 근본적으로 동일한 사유 작용에 기초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유 작용의 결과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이 차이는 어떠한 관점에서 고려될 수 있을까? 그 차이가 ‘정해진 목표’에 이를 수 있는 가능성들의 계산에서 가져야 할 정확성의 차원에서 고려된다면,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당연히 우월성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유의 가치가 그러한 정확성에서가 아니라 목표 자체의 설정에 의해 판단되어야 한다면, 인간의 사유는 인공지능의 사유와 구별되는 어떤 고유한 가치를 가지게 될 것이다. 오직 승리라는 목표만을 가지고 사유하는 알파고와 다르게, 승패를 떠나 무엇보다도 과정의 아름다움(바둑 기사들이 말하는 훌륭한 기보)을 생각하고, 그래서 승패가 갈린 후에도 그 과정을 다시 살펴보기 위해 복기를 하고 싶어했던 이세돌의 모습이 큰 울림으로 다가 온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라는 것이 여전히 인간의 고유성을 구성하고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사유가 정확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유롭기 때문일 것이다. 알파고의 사유 능력은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지만, 오직 알파고처럼만 생각한다면 그러한 생각은 결코 아름답거나 고귀하다고 말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목록보기
최근기사
D등급에서 9월 투표까지, 충북대·교통대 통...
학생들의 선의 노린 포교 수법, 개인정보 제...
<양심의 빈자리> 학내 공용공간, 잘 사용하...
고물가 시대, 학교 주변에서 찾은 가성비 밥...
원청교섭 나선 정부기관, 노란봉투법 현실은....
광장 More
<기자 보다> 빛이 나의 안에 있다면 그림자는 생기지 않...
<데스크칼럼> 절차 무시한 선거가 남긴 신뢰의 공백
<충슐랭가이드> 독서의 계절에 만나는 책과 카페 ‘인문아...
<기자보다> 여름이라는 유예기간, 우리는 어떻게 존재해야...
<데스크칼럼> 서툴고 투박한 내 언어의 가치
<츙슐랭가이드> 익숙한 골목에서 만난 뜻밖의 여정, ‘운...
<기자 하다> 어둠을 뚫고 한라산에서 맞이한 새해, 한계...
<데스크칼럼> 학점이 배움을 삼키다
<충슐랭가이드> 쉼표가 있는 삶, ‘초정치유마을’
<기고문> 개신단(開新壇)과 과유불급(過猶不及)
전체기사 종합
취업
대학
사회
광장
사람
특집
문화
동영상뉴스
포토&만평
학술
현상공모전
문학
동영상뉴스
수습기자모집
PDF자료실
지난호보기
신문사 소개 기사제보 독자참여 개인정보 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

28644 충북 청주시 서원구 충대로1, 충북대학교 신문방송사(발행인 : 직무대리 유재수 | 주간 : 이장원 | 부주간 : 신꽃비)

행정실 : 043-261-2934    충북대신문 : 043-261-2936    The Chungbuk Times : 043-261-2935    교육방송국 : 043-261-2953

Copyright ⓒ 2008 충북대학교 신문방송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