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2학기 처음 기자증을 목에 걸고 학생기자로 활동할 때 제일 어려웠던 점은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였다. 신문사에 들어오기 전에는 그저 컴퓨터를 이용해 기사 작성만 하는 줄 알았는데 막상 들어와 보니 일반인이나 전문가의 의견을 직접 듣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하지만 평소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붙일 기회가 적었기 때문에 ‘인터뷰 따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지나가는 학생들을 붙잡고 인터뷰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속으로 ‘날 이상한 사람으로 보면 어떡하지, 과연 인터뷰에 응해줄까’라고 생각에 지나보낸 학생만 수십 명은 될 것이다.
더 이상 인터뷰로 고민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극복하겠다고 다짐한 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고등학교 때 우리나라 속담 모음집에서 우연히 본 ‘사귀어야 절교하지’라는 말이었다. ‘사귀어야 절교하지’라는 속담은 서로 관계가 있어야 끊을 일도 있다는 뜻으로, 어떤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우선 시도라도 해야 좋은 결과가 나오던 나쁜 결과가 나오던 하는 것이다. 그때부터 인터뷰를 시도할 때 말을 붙여보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는 태도를 경계했다. 그 결과 처음 본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는 하나의 ‘흥미로운 활동’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만약 그때 직접 시도해보지도 않고 마음속으로만 걱정했다면 지금까지도 ‘인터뷰 따기’를 매우 두려워했을지 모른다.
기자가 불어불문학과 전공 수업을 듣다보면 학생들이 불어로 적힌 책을 소리 내어 읽을 때 자신감이 떨어지고 목소리는 작아지는 경우가 많다. 읽기도 전에 ‘발음이 틀리면 어떡하지, 완벽하게 읽어야 창피하지 않을 텐데’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지도교수는 “불어를 정말 잘하고 싶다면 실력이 없어도 자신감 있게 읽고 때로는 망신도 당해보고 부딪히기도 하라”고 조언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새로운 것을 경험하기도 전에 지레 겁을 먹는다. 익숙한 것이 아닌 낯선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해보지도 않고 걱정과 포기를 계속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행동이다. 세월이 흘러 죽음을 앞둔 침대 위에서 ‘젊은 시절 짝사랑 하던 그녀 혹은 그에게 말이라도 붙여볼 걸’이라며 후회하고 싶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정해진 답을 암기하는 것이 익숙한 세상에서, 정해지지 않은 답을 찾아 쉴 새 없이 도전하고 경험하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사귀기도 전에 ‘미래에 절교하면 어떡하지’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일단 사귀어야 절교라도 하지’라고 생각하며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도전하는 인생을 사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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