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대학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나?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 간의 바둑대결은 우리 인류의 미래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사람이 이용하기 위해 개발한 인공지능이 오히려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올더스 헉슬리의 디스토피아 소설 <멋진 신세계>(1932)를 비롯하여 조지 오엘의 <1984>(1948) 등은 인간이 기술에 지배당하는 암울한 미래를 그리고 있다. 인간복제를 통해 인간을 만들되 인공부화기에서 산소공급량을 조절하여 사회에서 필요한 만큼 다섯 계급으로 나누어 ‘맞춤형’ 인간을 만들고, 세뇌교육을 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빅 브라더’(몰카)를 이용해 끊임없이 감시하고, 그래도 삐딱하게 굴면 청소용 로봇을 시켜서 말썽꾸러기를 하치장에 처리하면 그만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다.
물론 정반대의 시나리오도 있다. 지금까지 사람이 하던 모든 일을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대신하고 사람은 그저 놀기만 하면 되는 미래다. 인공지능이 곧 없앨 직업의 리스트도 나와 있다. 올해 초에 발표된 유엔 미래보고서에 따르면 의사, 변호사, 기자, 통·번역가, 세무사, 회계사, 재무설계사, 금융컨설턴트 등 현재 잘나가는 전문직이 대부분 망라되어 있다. 올해 열린 다보스포럼에서는 202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단순사무직과 행정직 등 71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컴퓨터와 수학, 건축, 엔지니어 등의 분야에서 200만개의 새 일자리가 생겨서 결국 51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8년에는 300만 명 이상의 직원이 ‘로봇 상사’ 밑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의 변화에 따라 대학의 교육도 급변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의 핵심은 시험과 배움에 대한 사고의 혁신이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 있는 햄프셔대학은 2015학년도 신입생 선발부터 수학능력시험(SAT) 성적을 보지 않고, SA(학업계획서)와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통해 선발한다. 그 이유는 이 대학에서 성공적인 학생들의 특성을 파악한 결과 수학능력시험과 학생의 성공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성공은 일상적인 성실성과 학문에 대한 태도, 무엇에 대한 독창성 등이 더 근원적이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미네르바대학은 하버드대보다 더 입학하기 어렵다. 교수와의 수업은 대부분 온라인으로 하는데 강의는 없고 토론과 세미나만 있다. 이 대학의 교육목표는 학생들에게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타인과 소통하고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길러주는 것이다. 국내 대학으로는 고려대학교가 2018학년도부터 고교추천전형을 확대하는 대신 논술을 폐지하는 실험을 시작했다. 만점 받는 훈련을 잘해온 학생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자신의 인생을 바칠 수 있는 진취적인 학생에게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다. 이들 대학의 공통점은 적어도 15~30년 간 연구한 끝에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 대학도 미래전략팀을 만들고, 이용할 수 있는 모든 미래보고서와 학생들의 성공에 관한 자료를 활용하여 우리 대학의 미래를 진지하게 설계하자. 국책사업에 따라 기계적으로 정원조정만 하다가는 100% 기계한테 진다. 프로그램 할 수도 없고, 칩 속에 넣을 수도 없는 ‘인간다운 삶’을 어떻게 가르칠지 우리의 청사진을 설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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